언제 이세상에서 진정한 태평성대를 만날 수있겠나마는
올여름엔 좀 별난 재난들이 겹쳐 몰려 왔었던 것같다.
연일 백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는 곧 물러날 낌새도없이 괴롭혔고 태풍과 회오리바람이 삶터와 마을들을 휩쓸어 갔었다.
우리 한국에서는 가믐으로 농부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장마로 땀방울이 맺힌 고생을 헛수고로 만들어 주었던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두번에 걸친 태풍이 급기야 온나라를 뒤집어 놓았다는 암울한 소식은 많은 이의 가슴을 엎어놓은
지겨운 여름이었다.
그래도 가고 오는 세월은 막을 수없으니 어느새 가을냄새를 안은 바람이 창가에 와 있다.
올해는 벼농사도 과일과 채소도 모두 자연재해가 망쳐놓았을 것이지만 어쩌면 그 재난들의 한가운데 우리 사람들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인재의 책임도 적지않게 한몫을 차지할 것이라 믿어진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마구 짓밟고는 자연을 정복했다며 오판을 하고 건방을 떠는 것이 바로
우리 사람의 어리석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우리는 상처의 아픔을 딛고 더 강해지는 용기로 그 어려움과 고통을 비료삼아 물적 영적 수확의 계절을 맞게되는 가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가을은 사랑의 계절이다.
가을은 편지의 계절이다.
( 우체국을 살리자 )
우체국은 온통 돈을 끌어모으는 곳으로만 알았었는데 그 우체국이 해마다 쌓여가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문을 닫아야할지
모른다는 엄살아닌 하소연을 한다는 소식이다.
” 뭔소리야 ? ” 난 놀랐었지만 그럴만한 사연을 듣고는 다시 놀랐다.
” 헤어지자 보내 온 그녀의 편지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
바로 이것이 우체국을 적자에 허덕이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고향을 떠나와 나그네가 되어 살고있는 나에게 빠알간 봉숭아꽃잎을 넣어,
가을이 되면 낙엽을 넣어,
그래도 이못난 나그네를 보고싶어 흐르는 눈물을 닦던 손수건을 접어 넣어 애타는 순이의 마음을 담아 연필끝에 침을 묻혀가며
정성껏 써 보내던 그 편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써보낸 편지를
그 무뚝뚝한 머슴아가 잘받아 읽었을까 ?
이번엔 바쁘다는 핑게를 대지않고 답장을 곧 써서 보내줄까? 아치마다 열어보던 우체통앞엘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밥상을 물리고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로그인 만 하면 쏜살같이 연필도 없이 종이도 없이 눈앞에 있는 알파벳만 두둘겨 패면
하고싶은 소리, 별로 하고싶지도 않았던 소리, 다 쓰고는 (센드)만 누르면 순이가 방금 열어서 보던지 외출중이라 차안에서
스마트폰을 열어놓고 편지가 와있는 걸 보고는 좋아서 괜히 혼자 희죽거리다가 빨간신호등에도 용감하게 건너가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과학인지 그 무엇인지 때문에 우체국이 아우성이다.
우표를 안산다고 아우성이다.
나는 지금 내 조카도 안다니고 있는 우체국을 사랑해서 그렇다고 우리 교우들도 여럿이나 그 우체국을 다닌다는 걸 알고는
그들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생각하는 척 그래서 지금 우체국을 살리자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 불경기에 편지에 부칠 일도 별로없는 우표를 한번에 한 삼백장쯤 사다가 집에두자고 우기는 얘기도 물론 아니다.
그렇게 이웃을 내가 사랑할줄이나 진작부터 알았더라면 구원자 명단에 일찌기 이름이나 올려놀 수있었을 것을.
낭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판국에 뭔 한가한 낭만타령이냐구 그럴줄 벌써부터 난 알았다.
당신이 아무리 한달에 많은 돈을 내가며 스마트폰으로 텍스트를 찍어대고 투위터를 하고 훼이스인지 뭐도 한다고
내가 보는 앞에서 넙적한 최신 스마트폰을 꺼내보이면서 으시대더라도 난 그런 물건 쓰는 것 자체가 골치 아파서 살 형편이 아닌 걸
은근히 감추고 있다는 걸 당신이 눈치챘다 하더라도 그래도 난 낭만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우길 것이다.
정성을 다하여 밤잠을 설쳐가며 종이위에 적은 내마음을 봉투에 담아 침을 묻혀 닫고 우표도 침을 묻혀 부치고 우체통에 다가가
설래는 마음으로 넣어보내고 싶다는 주장을 하고싶은 게다.
우리가 그 낭만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고향도 함께 잃어버렸다.
우리는 사랑하던 순이도 잃어버렸다.
내마음도 잃어버렸다. 그래서 아마도 때론 나의 영혼마저 고향인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이 가을에 누구에겐가인지 모를 편지를 정성으로 쓰고싶다.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되어 보내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
( 웃으면 복이 와요 )
웃을 일이 없는데 어떻게 웃으란 말이예요? 미쳤나?
내마음이 우울한데 왜 웃어야 하나요?
슬픈데 웃으라구요?
그렇다.
도무지 웃을 수가 없는데 웃으라면 고역이다.
나는 남들이 웃는 것만 봐도 화가나는데 웃으라면 짜증일 것이다.
나도 자신의 삶속에서 너무나 오랜 나날들을 어두운 슬프고 괴로운 골짜기에 묻혀있었을 때 웃음을 잃었었다.
사람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광경을 만난 것같은 혼란에 빠졌었다.
‘ 어떻게 저이들은 도대체 무슨 웃을 일이 다 있을까 ? ‘ 싶어 그들들 몇번이나 다시 돌아다 본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병든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내마음은 녹이 슬고 폐허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세상 사람들은 말고라도 아마도 하느님에게서 마저도 난 위로를 얻을 수 없다고 여길만큼 포기한 삶을 헤메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먹구름에서 벗어나왔을 때 나는 그하늘에서 빛을 보았다
따스한 햇볓을 만났다. 그 빛은 하느님이었다.
하느님은 날 밝은 곳으로 이끄러내 주셨다. 그리고 마주보는 나에게 웃으시며 나더러 따라 웃으라 하셨다.
나는 웃었고 그 웃음을 이웃에게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떻게 하면 이웃에게 웃음을 나누어주고 싶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웃음)은 아주 좋은 것임을 하느님이 가르쳐주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이웃과 웃음을 나누라 하셨기 때문이다. 좋은 선물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웃으면,
몸에서 도파민 이라하는 행복홀몬이 생산된다.
웃으면
엔돌핀, 엔케릴린, 다이돌핀 이라는 천연마약이 생산되고 이것은 몸에서 괴로워하는 통증을 이기는 능력을 주며
그래서 몸이 통증을 멈추고 잊게되면 몸은 뇌파가 안정되고 자울신경이 안정되면서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이 증가된다.
그렇게 되어서 몸이 도움을 얻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우리의 영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맑은 영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에 그렇게 유익한 웃음을 직업적으로 나서서 선사한 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종에서도 챨리 채플린, 빅터 보르게 등은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받은 타고난 재능으로 평생동안 웃음을 선사한 이들이다.
그런데 이웃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 자신은 슬픈 사연들을 많이 간직하고 그들의 불행을 감추고
이웃앞에서 웃는 행복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게된다.
그것은 위선이 아닌 자신의 슬픔을 딛고 이웃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일을 행복으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불행한 삶을 비료로 삼아 이웃에게 웃음으로 승화시켜 확대재생산하려는 고귀한 마음이라 할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일지 모른다.
가뭄과 장마, 태풍과 재난으로 입은 상처와 고통을 새로운 내일의 행복을 향한 재생산으로 수확을 거두어야 할 이유일지 모른다.
밝은 날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비료로 삼았으면 싶다.
믿는 이에겐 (희망)이 있게 때문이다. 그 희망은 곧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 ” 그런 노랫말이 있다.
그냥 노랫말이 아니다. 사랑을 하면 아마도 정말 예뻐질 것이다.
우리는 (에로스의 사랑)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혼동하는 세대를 살고있지않나 해서 나 또한 그런 혼란에 빠지려는 유혹을
때때로 만나는 느낌을 얻지만 아가페의 참사랑은 정말 위대하고 대단한 힘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다.
가령
무더움 속에서 힘든 일을 만났을 때 만약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내가 헌신하고있다고 마음을 다진다면
그일은 분명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다.
땡볓에 어거지로 운동을 하려고 공원을 걸으면 지루하고 짜증스로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곁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는다 여기면 그처럼 기쁜일도 없다 여기게 될 것이다.
기쁘고 즐거우면 내몸은 그것을 알아채고 곧 몸의 건강으로 연결되고 그래서 나의 얼굴도 또 마음도 예뻐지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
당신이 이제 막 20 대 초반이지만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육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당신은 이미 늙은이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와 반대로 만약
당신이 80 을 바라며 살고있을지라도 젊은이의 마음으로 있다면 당신은 청년이라 자부해서 잘못됨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다가 육신의 삶이 다해서 당장 내일 스러진다해서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우리는 어차피 오늘만을 허락받아 살아가고 있음에랴 !
건강한 마음이되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웃과 행복을 나누며 그속에서 나의 행복도 찾았으면 하는 희망을 갖어본다.
그래서
이웃에게 편지를 씀으로써 우체국을 살리고
이웃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사랑하는 이를 마음안에 두어 예뻐지면 좋겠다.
난 오늘
너무 꿈을 야무지게 꾸고 있을까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