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대부분 오래 전에 감명깊게 보았던 영화, 쿼바디스( QuoVadis ).
아직도 그 영화의 줄거리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헀던 뜻을 거의 생생하게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사후 초대교회의 시절,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려는듯이 로마제국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로마병정들의 눈을 피해 지하동굴 같은 곳으로 입으로 몰래몰래 전하며 모여서 기도와 주님찬미를 드렸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였죠.
성령의 강림이 그런 기적을 가져왔겠지요.
헬레나는 마음에 영적으로 하느님을 만나 그의 아들, 콘스탄틴 로마황제에게 선교하고 호소하여
그렇게도 혹독하게 굴었던 로마가 기독교를 허용한 것 뿐만이 아니라 천주교를 로마의 국교로 까지 지정한 사실은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정말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그렇게도 무섭던 로마 마저 국교로 삼고 신봉했던 천주교가 그로부터 오랜 새월이 지나 2천년이나 흐른 지금
그 지하교회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니 이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말이지요,
북한이나 중국은 물론 이락, 이란, 시리아, 이집등 중동지방에서 천주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목숨을 내 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언제 어디서 그네들의 공안당국에게 기도모임이나 미사전례를 적발당한다면 그 즉시 끌려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안기관 이라고 말하지만 곧 이슬람 신도인 무슬림들의 탄압이라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들도 소위 종교생활, 신앙생활 한다는 이들인데 어째서 이웃들의 신앙을 아무 이유나 잘못도 없이 위협하고
총칼 마저 들이대는지 이해할 바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생명마저 위험에 드러내 놓으며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내려놓지 않고 지켜나가는 그들이야말로
순교자적 신앙인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고 멀리 있어도 그들 앞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됩니다.
아무런 위험도 없고 마음대로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으면서도
술에 물 탄듯, 물에 물 탄듯 미지근한 껍데기 신앙에 나태한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 저 자신을 돌아보자면
하느님께 또 그분들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보면,
어려움에 처하고 고통안에 머물면 어쩌면 역설적으로 신앙도 깊어지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한낱 구실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환경을 허락하시는 하느님께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성찰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