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사노라면,
만나게되는 놀라운 일이 얼마나 많을까.
놀랍지만 그 놀라운 일이 제 아무리 그 짧은 내 잔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도 알아낼 수 없을 그래서 신비스런 일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 놀랍고 신비스러운 사건.
하느님이 곧 아기가 되시어 우리 곁에 오신 그 놀라운 사건이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났었다.
사람의 눈으로는 보잘 것도 없을지 모를 저 시골마을, 나자렛에 천사를 심부름 보내시어 찾아내신,
사람의 눈에는 보잘 것 없었을지도 모를 저 시골처녀 마리아를 성모로 간택하신 그 사건은 참으로 신비스럽다.
그렇지 않은가.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아기를 갖게 된 것도 사람의 생각으론 알 수 없을 신비요,
그래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럽기만 한 요셉에게 그 신비를 말씀해 주신 하느님.
요즈음 같이 타락한 세상에선 별 대단한 사건도 아닐지 모르지만 처녀가 아기를 가졌으면 우선 동네의 눈총이 무서워 그 동네에는 더 살 수 없어 떠나야 했거나
요즈음 같이 타락한 세상에선 그 아기를, 그 생명을 세상에는 나오지 못하도록 강구하였을지도 모른다.
더욱 놀라운 일은,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를 만나자마자 너무나 놀라와 큰 소리로,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렇게 외쳤다.
마리아가 아기를 가졌다는 얘길 한 일도 없고 들은 일도 없고 더구나 아기 예수를 본 일도 없는데 알아보지 않는가.
이 얼마나 놀라웁고 신비스런 일인가.
나는 생각한다.
지금 남루한 옷을 걸친 어떤 이가 내 앞에 와서,
“그가 바로 나다. 네가 늘 믿습니다.” 그렇게 입으로 말하는 주님, 그 예수이다.”
그랬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뭐라 했을까.
웬 치매 걸린 이가 하필 오늘 같은 기쁘고 거룩한 날에 그 많은 다른 사람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날 찾아왔을까.
그리고 이렇게 헛소릴 하는 걸 보니 나는 오늘 김 샜군.
모처럼 오늘 하루라도 기쁘고 거룩한 마음으로 지내려 했건만… 김 샜어.
나는 전에도 여러 번이나 내 앞에 그런 남루한 모습으로 서신 예수님을 고개를 돌리고 돌아섰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전을 해서 어디를 가고 있었을 그 때,
배가 고프니 나더러 한 푼 보태달라 했을 때,
나는 어떤 구실을 용케도 찾아냈었나.
“어쩜 이 사람은 내가 일불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면 얼른 가서 술 한 잔을 더 먹거나 마약까지 살지도 몰라. 그러니 내가 보태주지 않는 게 이 사람을 오히려
도와주는 일일지도 몰라. 그냥 모른 체 가자.”
이렇게 생색까지 내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어느 날 만나고야 만 진짜 예수께서,
“너는 어째서 내가 헐벗고 굶주렸을 때 고갤 돌렸더냐?” 물으신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둘러댈 것이다.
“아니 주님. 그러시면 왜 그 때 진작 사진이 있는 드라이버 라이선스라도 보여주시지 않고 그러셨어요? 제가 어떻게 알아 뵐 수 있습니까. 하도 가짜도 많은 세상인데..”
그러다가,
그 때가 되어 내가 정말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나라의 문이 굳게 잠긴 걸 보면 아마도 나는 울며 문을 두들길 테지.
“주님. 접니다. 문을 좀 열어주십시오. 주님, 왜 저를 모르셔요? 늘 주님의 기도를 유창하게 외우고 사도신경도 외우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었잖아요.
네. 바로 그 모이세예요. 그러니 제발 문을 얼른 열어주세요. 헤헤..”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네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지도 몰라.”
나는 눈을 뜨고 보아도 그 이를 몰라본다.
그런데 하물며 내 눈으로 본 일도 없는 신비한 일을 내 어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눈으로 보는 것도 안 믿으면서 보지 않고도 “믿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오늘,
마리아를 알아보던 엘리사벳의 신비스런 사건을 읽다가,
그 믿음. 그 신비스런 신앙을 내 가슴에도 눈꼽만치라도 겨자씨의 한 조각이라도 심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품어본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