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구원
미국은 헌법이 명시한 자유의 나라 (The Land of Liberty) 입니다. 그러나 자유의 나라인 미국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유는 책임입니다. 그것도 성숙한 책임입니다. 이런 성숙한 책임이 없으면 자유는 방종이며 남을 괴롭히는 만행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예수님께 부자청년이 찾아 옵니다. 말씀을 찾아 떠난 기특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이 하느님보다 높고 귀해서
참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그물과 배를 버린 베드로와 그 의 동료들처럼 자기가 가진 것을 버려야 했었는데, 그 첫 번째 과제에서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어떻게 마련해 놓은 재물인데 펑펑 다 내어주고 오롯이 주님을 따르겠습니까? 눈에 밟히는 올망졸망한 아이들, 눈에 보이는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물건 어찌 다 버리고
오롯이 주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오롯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저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이면 족하지 우리 같은 평신도들이 언감생심 어찌 그런 생각을 감히 품을 수
있단 말입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말씀하시며 모범을 보이는 것에는 열광하며 환호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은 눈에 뻔히 보이는 이익과 관계되어
있어 어렵습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당신을 따름으로써 하느님 품안에서 누리게 될) 자유를 얻기 위해 먼저 (자신이 가진 것, 즉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소유물들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말씀입니다. 오죽하면 가진 것이 많은 사람(부자)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쉽다고 하셨겠습니까?
“이거 뭐야? 가톨릭신앙은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신앙인가? 그러면 종교를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하며 고심하는 분들이 계실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우리 신앙은 모든이 에게 가진 것 모두를 버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수준 이상의 부자는 ‘바늘 귀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낙타와 같은 이고, 어느 수준 이하의 재물을 가진 사람은
구원 받는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가졌거나 가지지 않았거나, 재물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라고 복음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진 것으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눌 수 있으며, 하느님이
자기에게 맡겨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얽매임 없이 자유로운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필립비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궁핍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어떤 일,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 나는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4,11-13).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살 수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이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 집착합니다. 그 집착이 이웃을 보지 못하게 하고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복권 당첨을 꿈꾸며 그저 평생에 단한 번 이라도 좋으니
원없이 펑펑 썼으면 좋겠다고 희망 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것 하나도 쓰지 못하며 모으려 아둥바둥
삽니다. 과연 물질 하나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가난 때문에 불편하게 살수는 있어도 행복을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놀랐다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재물은 하느님께서 우리게 내리시는
복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께 잘못을 많이 저질러 복을 주시지 않고 벌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해서 그들은 서로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예수님이 믿고 계신 하느님이고, 예수님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이 십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하느님은 ‘예수 믿고 구원 받아라,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을 하시는 분은 분명 아니십니다. 선하신 하느님은 선한 일을 하시지만, 선하지 못한 우리는 선하신 하느님께 장사꾼의 마음으로 다가섭니다. 한 것만큼 되돌려 받으려는
나름대로 합리적이며 계산적인 장사꾼의 마음 말입니다. 선하신 하느님을 잃어 버리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그분께 예쁜 짓을 많이해야 하고 교회에 많이 내고 지켜야 구원을
주시는 분으로 만들어 장사꾼의 하느님을 우상숭배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원에 집착한 나머지 선하신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율법을 충실히 지키면서 재물과 명예를 얻기위해 살기보다는, 많은 것을 버리고 잃는 아픔을 겪더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롭기 위해 얼마를 교회에 내야하고 얼마를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지를 오늘 복음은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집착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살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것들이
무엇인지 아니 무엇이 우선 인지 먼저 생각하라고 오늘 복음은 외치고 있습니다.
– Fr. 김 두진(바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