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이사오고 나서,
이미 유창하기만 했던 영어실력을 좀 더 세련되게 해보려고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아서 유리할 것만 같아 나홀로 보다는 선택하게된 직장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됐던 친구가 반갑게 다가오며 손을 잡자고 했었다.
” 안녕, 내이름은 박씨( Baxi)라고 해. 넌 ? “
” 응 반가워. 미스타 박. “
” 이봐, 이름이 박씨라니깐. 네 이름이나 말해 ! (은근히 짜증나는 녀석일쎄( 물론 속으로만 그랬을 테지만.. 그의 얼굴만 봐도 나를 두려워 했다)”
” 난 모이세야. 글쎄 만나자마자 짜증이라니? 그러지 말고 아랏써 미스타 박. “
” 이친구 진짜 왕짜증이네? 미스타가 아니고 이름 그자체가 박씨라니께? “
” 글쎄 우리 한국은 상대를 원래 존중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어 미치다 박. “
” 이새끼는 진짜 정말 왕짜증 그 녀석일쎄. 정말 상대못할 코리안이구나. 다신 아는체 하지마라. 썅 !
“이렇게 돼가지고 사귀자마자 헤어졌던 그 마음씨 착하던 인도사람이 생각난다.
이런 짜증스런 경험담이나 하자는 건 아이고,
함께 나눔이 서로에게 생각해 볼 이유가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실컨 좋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만나면 서로 통성명하고 이야길 나누게 된다.
소개받은 그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했다가 다시 만나게 됐을 때, 그 장본인이 소개했던 그대로 기억해서 불러주는 게 예의( ! )일 것이다.
하지만 또 만나게 된 그 상대가 기억력이 나쁘거나 아니면 성의조차 없는 그래서 엉터리로 상대의 이름을 제멋대로 부른다면
물어볼 필요도 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구겨놓는 일이 되고야 말것이다.
이렇게 그를 불편하게 ! 만든 내가 동양 한국의 예절을 말하다니…
이런 일들은 특히나 상대적으로 교만에 빠진자가 기억이 안나면 양해를 정중하게 구해서 다시한번 묻는 대신,
자기 멋대로 엉터리로 부르는 사람들을 직접 겪어본 일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갖고 장난끼로 하는 걸 곁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진다.
그런데,
이런 낭패를 직접 겪는다면 그날의 기분을 통째로 망가뜨리게 되고야 말 것이다.
가령,
다마스커스를 향하여 전도여행중이던 사도 바울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었다.
에수께서 아직 사울이던 바울에게,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 Jesus )이시다. “
그때 마침 주님을 박해했던 이가 사울이 아니고 아직 생기지도 않았던 아메리카사람이었다면,
” 오, 하이 지저스. ” 그렇게 응답했을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 넌 어찌하여 남의 이름을 그렇게 제멋대로 부른단 말이냐? ”
” 오 마이갓 ! 지저스 크라이스트. 웟 이즈 유어 푸라블래므?( What is your problem?)
유 아 무쵸 프라불래무 어? “( You’re giving me all kind a problem Uh? )
이런 상상도 못할 난감한 일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름 그 자체가 박씨라고 분명히 소개했음에도 불고하고 아무리 장난을 좋아해도 그렇지 어떻게 첨 만난 사람의 기분을 잡쳐놓을 수 있을까.
그사람이 지금쯤 어디에서 건강하신 채 잘살고 있기를 바라며 뒤늦게 용서를 청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웠던 기억을 되살려보는 아침이다.
”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미스터 박. 오 미안쏘리. 이 못된 버릇 정말 못버리는 난 불치의 버릇인가 봐. 쏘리 미스타 박 ! “
이정도면 유명한 명의라도 이 환자는 사양하지 않을까?
” 이그… 속썩이지 말고 점심으로 쌘드위치나 만들어라 몽청아 (좋아요, 몽청은 꿈이 맑은 사람( My dream always high sky)이란 뜻이야. ㅋ ‘ )
이세상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한번쯤 자신의 평소 습관이 어디쯤 머물고있을까 돌아보는 것도 시간낭비는 아닐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