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 축일 미사
신 구약 성경을 통틀어 주님께서 친히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인물은 많지 않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그리고 시몬이 베드로로 바뀐다. 주님께서 이름을 바꾸어 부르시는 이유는 그들을 새롭게 창조하시어 당신의 일꾼으로 유용하게 쓰시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하느님의 강한 의지 표현에 부응하여 이름이 바뀌게 된 이들은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인생에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충실한 하느님의 오른팔이 되어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시몬의 경우 예수님으로부터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부여 받는다. 베드로란 이름의 뜻은 큰 바위, 반석이란 뜻이다. 바위, 반석이란 단어는 든든함, 변함없음, 안전한 의지처의 느낌이 있지만,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 보여준 모습은 그런 든든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몬 베드로는 우유부단하고, 함부로 말하고 덤벙대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한 말을 자주 뒤집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즉흥적이 얼렁뚱땅하며 때로는 격정적인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시몬을 베드로라 개명해 주시고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맡기신다.
사울이었던 바오로도 예수님의 부활 체험 이후 스스로 개명했다. 바오로는 베드로 사도와는 많이 다르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듣고 배웠지만, 바오로는 생전의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뵌 적이 없다. 베드로는 무식한 어부출신이지만 바오로는 다르소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 출신으로 유명한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에서 정통으로 율법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는 열렬한 유태교 신봉자로서 초기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박해에 앞장섰던 인물이었고,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에서 바울로로 개명하고 사도가 된다. 부러질 망정 휘지 않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 바울로는 복음 선포의 선봉장으로 온세상을 누비며 이방인의 사도가 된다.
베드로는 자신의 말을 뒤집고 예수님께서 가장 힘드실 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사람이다. 스승님께서 베풀어 주신 그 사랑을 배신한 것이니 죄인 중에 큰 죄인이었다. 바오로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감옥에 넘겼고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한 사람이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그 역시 죄인 중에 죄인이었다.
초대 교회에서 매우 비중 있는 이 두 사람의 치부를 드러내면 오히려 선교에 걸림돌이 될 법한데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 위대한 두 성인이 한때 큰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다. 이들이 한때 하느님의 원수였고, 나약하였으며, 분별력이 부족하여 때로는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유는 그들의 생애에 아무런 결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자비가 자신들이 지었던 죄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믿고 회개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이후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랑의 삶을 살려고 애썼다는 사실이다. 사람에게 거룩함은 죄를 짓지 않는 ‘완전무결한 순수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죄, 털면 털수록 나오는 먼지 같은 그 죄를 솔직하게 주님과 다른 이에게 고백하고 회개하는 자세에서 거룩함은 시작된다. 베드로와 바오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신약 성경의 당당함은 바로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는 놀라운 답변을 내 놓는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은 자기 지식과 능력, 지위에 기대어 성과를 누리고 과시하는 삶을 행복이라 여기지만, 세상의 눈에 어찌 보이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은 모두 좋은 것임을 믿기에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고백하며 믿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사도로서의 본인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자신의 약함을 겸손히 고백하던 사도가 이제는 스스로 자화자찬 하듯 들리지만, 이는 교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 기반을 둔 진솔한 자기 인식이다. 복음을 위해 치열하게 투신했던 사도는 자기 삶에서 어떤 후회나 미련을 남기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탈바꿈 한 그는 그분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자신을 그리스도로 채웠기 때문이다.
우리들도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처럼 세례를 받으며 개명을 했다. 그분께서 부르셨으니 그분께서 손수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우리의 약점이나 죄에 기울지 말고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어 그분의 사랑을 선포하는 우리였으면 한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