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거룩한 십자가 현양 축일
오래전 LA에 살 때 다리를 다쳐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수술을 받고 후속 치료를 위해 다시 병원에 가는데, 병원 입구가 오르막에 자동문도 아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한 젊은 여성이 다가와 내게 문을 열어주어 간신히 들어간 적이 있다. 문을 열어준 분에게 감사하다고 했는데, 이 여성이 가까이 와서 말했다. “내가 더 감사하지요. 나는 팔이 부러져 하느님께 불평하고 살았는데, 오늘 다리가 부러진 당신을 보니 내가 얼마나 다행인지 알게 되었어요.”처음에는 다리 부러진 나를 놀리나 싶었지만,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고통을 기억하며 구원을 받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를 잠깐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거룩한 십자가 현양 축일이다. 십자가가 높이 들려진 축일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십자가 하나씩은 가지고 산다. 우리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에 걸려 진 십자가, 자동차에 걸려 진 묵주 십자가 혹은 손가락에 끼워진 묵주 십자가 혹은 주머니 속에서 잠들어(?) 있는 묵주 십자가 등… 그러나 그 십자가들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십자가일까?
십자가를 영어로 "Cross"라고 한다. 그런데 Cross는 예수님이 없는 십자가를 뜻한다. 그러면 예수님이 못 박혀 있는 십자가는 뭐라고 할까? "Crucifix"라고 한다. 그런데 개신교 교회에 가 보면 늘 예수님이 없는 Cross를 달아 놓고, 대부분의 천주교 성당에는 예수님이 달려있는 Crucifixion을 달아 놓는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십자가 현양축일은 "Exaltation of the Holy Cross", 곧 예수님 없는 십자가가 높이 올려 진 축일이다. 사실 십자가는 거룩한 것이 아니었다. 거룩하기는 커녕 죄인들을 매달던 죽음의 형틀이며 인간이면 누구나 끔찍하게 생각하는 저주스러운 것이다. 이 저주스러운 것이 나무토막이 어떻게 거룩한 것이 되었을까? 예수님께서 선택하여 매달리셨기에 생명을 가져오는 거룩한 것이 되었다. 사실 십자가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만이 십자가를 지게 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피할 수 있어도 피하지 않고 십자가를 선택한다. 선택은 자유이니 사랑은 스스로 선택하여 지게 되는 십자가이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에 구원이 달려있네.”성 금요일 십자가 찬양 노래다. 구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사건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한 희망의 여정에 실패한 까닭은, 그들이 보았던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온갖 불평불만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실패한 구약의 불 뱀 대신 신약의 십자가가 다시금 세워졌다. 낮엔 구름기둥으로, 밤엔 불기둥으로 현존하셨던 하느님 구원의 기둥이 십자가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대신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이 십자나무에서 꽃피워졌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다른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면, 그 안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하신다. 하느님 스스로 십자가에 들어 올려 진 까닭을 오늘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 15)
십자가가 위대한 까닭은, 우주의 온갖 고통과 죽음이 이 십자가를 통하여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며 인간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 위로이시며, 고통의 길을 동행하시는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다 이루어졌다”(요한 19, 30)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완성시킴과 동시에 고통과 죽음을 승리로 바꾸셨음을 알리시는 것이다. 십자가 밑에서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백인대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이렇게 증언한다.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 27, 54)
오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삶의 십자가를 져야 우리가 원하는 마음의 평화와 축복, 또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겠다고, 또 거기에서 구원이 있음을 믿는다는 표시로 집안의 중심에, 성당에, 각 공동체가 모이는 회의실에 걸어 놓는다. 우리가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 혹은 자동차에 걸려있는 십자가 혹은 주머니에 모셔 둔 십자가가 장식품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라 기꺼이 십자가를 지겠다는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로 그 십자가 안에 세상 구원이 달렸기 때문이다. “보라! 십자 나무 세상 구원이 여기 달려있네” 부활에 이르는 십자가는 그래서 주머니 속에 감춰질 것이 아니라 세상에 높이 들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