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11월23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1월 23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역설(paradox)은 겉보기에는 모순되거나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진실을 담고 있거나 새로운 통찰을 주는 표현 방식이나 논리적 주장을 말한다. 한 예로‘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표현, 아우성은 소리인데 어찌 소리가 없을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크나큰 역설을 만난다.

교회가 예수님을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선포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다윗이(제1독서) 당신의 조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듯이 세상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기(제2독서) 때문이다. 곧, 예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물의 임금이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조롱을 받으신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께서 아무것도 아닌 당신 백성에게 조롱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아주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렇게 보니 예수님의 왕권, 예수님의 통치는 세상의 왕권과는 무엇인가 다른 모습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만물의 임금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만물이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으신 것은, 오로지 당신 피로 모든 이의 죄를 대신 기워 갚으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하느님의 계획이었고, 십자가는 바로 세상 창조 때부터 진행된 하느님의 계획이 온전히 실현된 장소였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인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를 십자가 처형 장소로 데려다 놓는다. 세상 임금의 화려하고 영광스런 옥좌가 아닌 치욕과 수치의 자리가 그분의 왕좌다. 거기서 그분은 세상의 정의를 세우는 재판관이나 총독의 입에서가 아니라 한 강도에 의해 무죄를 선언  받으신다. 우리 임금님의 결백을 한 죄인이 알고 있다. 세상의 임금은 판관의 자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사람들을 심판하고 단죄하지만 우리의 임금님은 세상의 힘에 의해 사형을 선고를 받는다. 그분의 무죄를 주장한 사람은 같이 사형당하는 죄인과 이방인 백인대장뿐이다.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37) 이 말씀은 단순히 생각 없이 뱉는 조롱이 아니라 사람들이 구원자, 메시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암시한다. 세상의 권력자나 지도자가 백성을 위해 받은 권한이 결국 그 자신을 위한 것에 머무는 경우를 자주 본다. 어쩌면 권력의 속성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권력자, 지도자들에게 실망하는 이유는 자기 영달보다 백성을 우선하는 이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백성은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이용하고 착취하는 수단이고 배경일 뿐이다. 자기희생이 없는 권력은 그래서 백성의 마음을 더 각박하게 만들고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해를 입힌다. 세상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러 오지 않은 이상한 구원자를 만났다. 백성의 목숨으로 자기 영화를 구축해온 권력자의 세상은, 그분 존재를 통해 자기 생명을 바쳐 백성의 생명을 구하는 진정한 구원자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참 메시아와 거짓 메시아,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갈라놓는 잣대는 자기중심성이다.

예수님이 당신 나라의 왕권을 온전히 행사하신 모습은 본문의 마지막에서야 등장한다. 예수님의 무죄함을 믿음으로 고백한 죄수가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주십시오”(42)라고 청하자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시며 비로소 당신의 권위와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신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첫 인간이라는 영예를 허락하심으로써 십자가상에서 왕으로서의 권한을 아낌없이 행사하신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과 모든 피조물의 왕이실 수밖에 없는 근거를 아름다운 언어로 전한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임금님의 권능과 세력은 이렇듯 피 흘린 희생 제사로 시작된다. 세상 권세와 차이가 나도 너무 큰 차이다. 그분이 아름다우신 이유는 그분의 강력한 힘과 권력으로 당신을 감쌌기 때문이 아니라. 부정한 우리의 죄를 떠안으신 비참한 몰골  때문이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기껏해야 자기 이익과 부합하는 이들의 지지와, 속모를 한시적 찬사를 받을 뿐이지만, 피로 물든 예수님은 그래서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으신다. 이것이 세상 임금과 우리 임금님의 차이다. 그분의 약함과 자기를 버린 포기와 바보스런 선택은 배은망덕하고 냉담하고 무딘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만물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써 참된 임금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도 그분을 본받아 예수님의 왕직에 동참하도록 하자. 곧,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마련하신 하느님의 계획이다. 마지막 역설로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착한 강도가 되고 싶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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