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8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Fr.김두진(바오로)강론

12월 28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신자 분 모두에게 성탄을 축하합니다. (Merry Christmas!) 인사드린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성탄의

축제기간은 매우 짧게 느껴진다. 대림시기 동안 여기 저기 불려다니며 판공성사, 다른 성당의 축하 행사

등을 참석하다보니 어느 새 성탄 전야, 또 성탄 축일이고 바쁨에 치어 오시는 예수님을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밖은 벌써 성탄의 축제를 걷어내고 있다.

밖에 눈을 치워 쌓아둔 눈덩이가 녹아내리를 것을 보면서 모두가 눈삽을 들고 눈을 치우던 감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지난 주일에는 젊은 부부들이 우리 본당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밥하고 설거지 하던 모습,

그리고 기쁨으로 동참해준 신자들의 사랑이 가슴에 남아 훈훈하다. 생각해 보면 그래서 우리 작은

공동체는 예수님을 모신 성가정임을 확신한다. 거기에는 기쁨의 말씀이 있으셨고,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있었으며 아버지 요셉의 헌신적인 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성탄이 삼일 지난 후 지내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다.

가정의 시작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여 사는 공동체 삶부터다. 가정을 이루는 첫 출발은 고운

정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살다가 보면 고운정은 어디 명절에나 한 번씩 펼치는 병풍처럼 방안의 한편에

접혀져 있고, 늘 먹고 나면 치우기가 여간 성가신 잔칫상의 뒷정리처럼 그놈의 미운 정은 집안 어디든지

눌러 붙어 있는 듯하다. 방마다 쌓아놓은 세탁물을 보면 자식들에 대한 속상함, 먹고 난 식탁을 보면

시댁에 대한 불편함, 가계부를 보면 남편에 대한 속상함, 현관에 너저분하게 놓여 있는 신발만 보아도

덜컥 내려앉는 가정의 무게감 등……. 혼례 때 예식장의 축하곡은 어느새 아버지의 큰 소리와 계율로

바뀌어 있고, 아내의 시간 단속은 깨진 새벽 종소리로 변한 새마을 노래로 바뀌어져 있으며, 밑 빠진 독

같은  자식들의 입을 가진 가정에 성가정이란 타이틀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이글을 쓰면서 우리 성당의

가족들을 생각해 보니 이제는 나이가 묵직이 들어 아이들이 스스로 가정을 꾸려 나이 먹은 부부만

썰렁하게 살고 있는 가정이 더 많지 않나 싶어 (젊은 영어권 부모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라) 이런 글을 쓰는

나 스스로도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생각해 보면 좋은 가정, 따뜻한 가정은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듯이 항상“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루카2,35)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안내심이 없이는 가정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두 가지 말씀의 성취를 전해준다. 하나는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마태

2,25)라는 말씀의 성취요, 다른 하나는 “그는 나자렛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마태 2,23)라는 말씀의

성취다. 그런데 이 말씀들의 성취 안에는 모진 고통들이 함께 한다. 곧 이 가정은 이집트에서

불려나오기까지, 또 나자렛 사람으로 불리기까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쫓겨다녀야했고, 변방의

거류민으로 살아야 했고, 숨어 살아야 했다. 그러니 고통이 없는 가정은 꿈에서나 보여 지는

파라다이스다. 아니 어쩌면, 성가정에는 고통이 필수일지도 모르겠다. 말씀의 성취에는 고통과 십자가가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해서 성가정이란 고통이 없고 편안하고 안정된 단란한 가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 고통 속에서도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요 자리가 되는 가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말씀이 활동하고 성취되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하다. 무엇보다도 신비로운 것은 말씀이신 분께서

말을 하지도 못하는 아기 모습으로 우리 가정과 우리 공동체 안에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아기는 말을 할 줄 모르면서도 우리를 이끌고 우리 안에서 성취를 이루신다. 말씀이시지만, 말을 못하는

이 아기는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때로는 보이지도

않은 빈자리가 되어 우리네 가정, 우리네 공동체를 이끄신다.

이렇게 아기 예수님은 우리 가정과 공동체의 주인이면서도 우리 모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빈자리로

계신다. 마치 ‘가나안의 혼인잔치’에서 주인공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빈자리로 있는 신부처럼, 우리 가정

안에서도 빈자리로 계시면서 우리 모두를 품으시고 끌어안으신다. 그리고 그 말씀의 성취를 이루신다.

그러니, 공동체의 빈자리, 그곳이 바로 중심임을 보아야 할 것이다. 곧 자기 자신이 중심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성가정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고 고운 정에서 출발한 성가정을 지키는 일이다. 올 성탄처럼

가슴이 훈훈하고 감격스러운 성탄은 없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의 흔적이 가슴에 남아 먹먹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모두에게 "기쁘다 우리 주 예수님 오셨네." 하고 인사드린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