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연중 제 2 주일
오래 전에 가죽 옷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 한 적이 있다. 경제 부흥 시절이라고 했지만, 아직도 배고프던
시절, 가죽 원단을 수입해서 가공하는 공장의 노무자들은 가죽에 붙은 살을 떼어 집에 가지고 가곤 했다.
가죽은 살을 다 발라내고서 약품으로 처리한 후, 그 약품을 말리고 나서 부드럽게 가공한 다음 색을
입히고 옷을 만든다. 그래서 동물 애호가들은 가죽 옷이나 모피 옷을 입지 않는다. 가죽옷이나 모피는
동물의 죽음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람들은 가죽옷을 입고 살았다. 태초에 죄 지은 아담과 화와가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알몸을 온전히 가릴 수 없어, 동산 나무
사이에 숨는다. 이 모습을 불쌍히 보신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창 3,21) 인간이 죄를 지어 얻은 부끄러움을 하느님께서 친히 이들에게 옷을 입히심으로써 덮어주시고,
당신과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 주시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가죽은 동물의 희생이
아니면 얻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동물의 피 흘림으로 마련된 가죽옷으로만 비로소 인간이 지은 죄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번 태어난 지 1년 정도의 어린
양을 제단에 희생 제물로 바치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죄 사함을 구하는 제사를 드렸다. 그들 모두가
제단에서 흘린 ‘어린양의 피’가 아니면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죄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친히 완전한 속죄와 죄 사함의 희생 제물을
마련하실 것이란 믿음으로 메시아, 곧 하느님의 어린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경에서, 우선 ‘어린양’은 네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 하느님께서 준비한
제물로서의 ‘어린양’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신다는 것이다. (창세 22장)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갔을 때,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묻자, 아브라함은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한다.
둘째로 파스카의 ‘어린양’이다. (탈출 12장)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죽음의 재앙을 내리는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도록 했다. 이날 저녁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의 맏이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은 희생양을 ‘파스카의 어린양’이라 한다.
셋째로 속죄의 희생양으로서의 ‘어린양’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동할 때 그들은 40여 년 동안 사막을 헤매면서 양떼와 가축을 이끌고 천막을 치면서 옮겨
다녔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천막 주위에 사나운 맹수들이 다가오면 맹수들에게 내주는
양을 ‘속죄양’이라 불렀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 다음,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 이 때 희생양 두 마리를 준비하여 한 마리는 하느님께 번제로
불살라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대제사장이 그 위에 자기의 손을 얹고 자기와 온 민족의 죄를 자복한 후에
광야로 내보냈다. 이 둘은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
마지막으로 승리하신 천상의 ‘어린양’이시다(묵시 5장). 어린 양은 목자로서, 모든 믿는 이들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인도하실 분이시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에서 ‘야훼의 종’의 둘째노래를
들었다. 이스라엘의 많은 학자들과 선지자들은 이 고난 받는 야훼의 종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연구 했지만,
여전히 불가사의한 수수께끼였지만, 이제 마침내 세례자 요한에 의해,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바로
오늘 복음의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증언이다. 이 증언에는 야훼의 종과 대속의 희생양의 두 가지
의미가 함께 있다. 곧 예수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진 ‘야훼의 종’임과 동시에, 탈출기 12장에 나오는 ‘파스카의 어린
양’이시다. 곧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는 예수님에 의해 “야훼의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어린양”으로
성취되고 완성된다.
특히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이라는 표현에서 “세상의 죄”라는 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세상’이란 온 세상 사람들, 곧 전 인류를 일컫는 표현이다. 그리고 ‘세상의
죄’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악들,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죄들을 포괄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의 어린양이심을 드러내준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그분이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증언한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매 미사 때
마다 울려지는 거룩한 선포이다. 우리게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초대 받음 자체도
복되지만 그 거룩함을 먹고 마시는 우리는 이 얼마나 복된 자들이 될까?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을 선포하며 살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