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8일 사순 제 3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3 8일 사순 제 3 주일

모든 생명의 근원은 물이다. 우리 인간들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 물(양수)속에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는 9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70% 이상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때문에 우리 몸은 물이 부족하면 목마름을 느끼고 물을 달라고 아우성친다. 오늘 독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은 내용도 물을 달라였다. 물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정화의 작용까지 한다. 우리가 매일 얼굴과 몸을 씻을 때 사용하는 물이나 세상의 모든 종교 예식에 사용되는 물이나 모두 영과 육의 정화를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같은 정화를 몸소 보여 주시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다. 오늘 복음의 사마리아 여인은 육의 생명을 살릴 현실적인 물을 달라고 예수님께 청한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달랐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 14).

 

우리 모두 무언가에 목말라 한다. , 명예, 사랑, 혹은 타인의 인정하지만 채워도, 채워도 가슴 한구석이 허전한 '영적 갈증'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고질병이다. 오늘 그 갈증의 해답을 2,000년 전 야곱의 우물가에서 찾는다. 만남에 사랑이 있으면 늘 아름답다.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목마름으로 빈 물동이를 들고 우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한 사마리아 여인과 자신을 모두 내어주어도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목마름을 가지셨기에 샘솟는 물을 들고 여인을 찾으신 예수님과의 만남. 아름다운 만남이다. 그렇게도 행복에 목말랐던 이 여인은 이제 마침내 일곱 번째 남자, 완전한 사람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이 목마른 두 영혼의 만남, 이 아름다운 만남은 곧 십자가에 메달리신 예수님과의 만남의 또 다른 모습이다.

 

복음 속 사마리아 여인은 아무도 오지 않는 뜨거운 정오에 물을 길으러 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지내던 그녀의 삶은 조각나 있었고, 내면은 타 들어가는 갈증으로 가득했다. 우리에게도 남들에게 말 못 할 상처와 고립된 '나만의 정오'가 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아픈 시간, 그 외로운 자리로 먼저 찾아오신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하느님의 선물, 샘솟는 물(요한 4,10)이라 할 수 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요, 그 사람 안에서 샘이 되고 물이 솟아날 것이요, 그 물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요한 4,13-14).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 아닌 것에는 그 어떤 것에도 더 이상 목마르지 않음이요, 아니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만을 만나게 될 것이요, 그 사람 안에서 샘이 되고 물이 솟아난다는 것은 그 물이 그 사람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이웃에게 번짐이요, 그래서 이제는 채워야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이 아닌, 자기를 내어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예수님의 목마름이 솟아오름이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한다는 것은 우리를 새로운 삶에로 변화시키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시킴을 말해준다.

 

바로 이 물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쏟아진 그 물이요(요한 19,34),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생명, 곧 구원이요, 예수님과 아버지께로부터 나신 성령, 곧 영이며 진리요,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다. 바로 이 물이 제1독서에서 보여 진 호렙의 바위에서 터져 나온 그 물이다. (탈출기 17,6).

 

그래서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다.(로마 5,5)면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중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고 전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물(물질적, 일시적 만족)과 당신이 주시는 생명수를 대비시키신다. 영원한 샘물은 주님이 주시는 물로 내 안에서 솟아나는 샘이 된다. 이제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허덕이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이웃에게 사랑을 내어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나눔의 삶'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부활의 생명수는 과거의 어둠과 죄의 묶임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마셔야 할 부활의 물이다.

 

이 아름다운 만남의 마지막은 신앙고백으로 마무리 된다. 십자가 아래에서 이방인 백부장이 이분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6,39)라고 고백했듯이, 이방인으로 취급되었던 사마리아인들이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요한 4,42)

예수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만난 여인은 평생을 매달려온 물동이를 미련 없이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간다. 진정한 만남은 고백과 증언으로 이어지며 내가 만난 주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혼자만 간직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이번 사순 시기, 낡은 물동이를 내려놓고 내 안에서 솟구치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우리였으면 한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4,1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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