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꼴로레스

하느님의 빛들이 와서 모였다.
주님의 빛들이
마치 소나기가 지난 후에
앞동산에 걸린 무지개처럼, 찬란한 색깔들처럼
주님안에 하나를 이루자며 모여 왔다.

먼 곳에서
또는 바로 건너에서 한 곳으로 모여 와 주님을 찬양하며 하나를 이루었다.
하나 하나는 마치 페이퍼 클맆처럼 고리가되어
고리는 고리를 꿰어 이었다.

고리들은 아름다운 모습을 이루었다.
어여쁜 모습은
아름다운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색깔들이 자리를 비웠다.
너무나 많은 빛들이 무지개를 채워내지 못하고 흐터졌다.
그것은 하느님의 빛날 색깔을 바래게 할 것이다.
하느님의 빛을 가리는 일은 그이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다.

                                                * *

주먹을 불끈 쥐고 공기를 가르며 바람을 일으켜 데 꼴로레스를 합창하고
잔치를 뒤로하고 되돌아 오는 길에서 왠지 착잡한 마음이되어 내 모습을 돌아본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없어 농부는 꾸르실료를 소집하고 사람들을 모아 열매 따는 법을 가르치고 세상에 파견하며 마치 수탉이 끼리 끼리 끼리 목청을 돋우고
암탉은 까라 까라 까라 합창하며 병아리는 삐오 삐오 삐오 화답하듯이 온 세상 끝까지 나아가 농부의 말씀(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어라 하셨는데

그 수도 많게 내보낸 일꾼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세상에 나아가 빛이 되리라고 했었던 그 수 많은 꾸르실리스타들은 어디에 숨고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나오지 않고 있는가?

거기에는 필경 많은 사정이 있을 것이었다.

몸이 말을 듣지 많는 이,
마음이 아파서 가라앉아 있는 이,
주머니가 비어 있고 치뤄야 할 일들에 붙들려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 말고도 정말 한번 깊이 생각해보고 또 따져봐야 할 일들은 없을까?

혹시,
만에 하나 혹시라도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주님은 나더러 세상의 빛이 되라 하셨는데 난 오히려 그 빛을 가로막고 빛을 가리는 자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나는 그걸 깨닫지 못하고 빛의 역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그걸 알고 있지만 그 가리고 있는 자리에서 비켜나기를 꺼리는 건 아닌가?

(나)가 아니면 어쩐지 몸통이 뒤뚱거리고 흔들리고 잘 안될 것 같아 염려하고 있을까?
이웃들은 (나)를 걸리돌이라고 걱정하는데 난 아무래도 디딤돌이라고 착각하는가?

그래서 난 강물이 마르고 동산이 닳을 그 때까지는 버틸 심산일까?
물이 흐르지 못하고 연못에 고여 묵으면 썩는다.
썩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아남지 못한다.
산에 오를 때에는 내려올 준비를 마련하고 떠나야 한다.
아니면 거기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된다.

하느님앞에 부끄러운 나는 오늘 골방에 들어가 마음을 열고 그 안에서 그동안에 쌓였을 이런 많은 잡동사니들을 찾아내고 쓸어모아 먼 곳에다 내다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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