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한국의 나주지방에서 그랬다.
또 언제인가는 미국 시카고에서도 그랬고 사방에서 때때로 그런일은 있었다.
사람들은 “성모님이 발현했다.기적이 일어났다. 와! 와!” 하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리로 우르르 몰려갔다.
교회당국에서 조사하여 교회법에 따라 교령(Decretum)을 발표하고 교회가 공인하지 않는 일에 현혹되지 말것을 당부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몰려간다.
사람들중에는 천주교인뿐 아니고 구경꾼도 있고 심지어 교회의 사제와 수도자도 섞여
신자들만 아니고 교회당국마저 혼란에 빠뜨리려한다.
이런 일은 단순한 혼란을 뛰어 넘어 (큰 재난)의 징조도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큰 재난의 징조일 수 있는 사례를 이렇게 미리 말씀해 주셨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너회에게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아라. 그러니 조심하여라.”(마르 13.21)
이럴때에 나는 무엇을 쫒아야 할것인가?
교회의 결정을 쫒아야 한다. 교회에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그 권위는 어디로 부터 오는가?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신 예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 교회의 권위는 오류가 없고 언제나 옳은가? 불행히도 그렇지는 못하다.
예수께서 직접 주셨지만 (사람)에게 맡기셨다.
사람은 오류가 있고 잘못도 한다.
유명한 갈릴레오의 재판때도, 십자군 전쟁으로 많은 사람의 피도 흘렸다.
조상을 기리는 제사의 미덕을 당시의 교회법에 따라 부정하는 소위 (천주학쟁이)들을 박해하는 조선당국의 처사는 어쩌면 교회법보다 더 옳았을 것이다.
교회가 후일에 제사를 허용하게 될 때 까지는 교회법을 따르다가 그것이 빌미가 되어 수 많은 (천주학쟁이)가 피 흘리며 죽어 간 그 (순교)를 딛고 우리는 지금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교회도 그 잘못을 찾아낸 사례가 많은데 왜 무조건 교회의 권위만 쫒아야 하나? 교도권을 부정하면 결과적으로 그것을 세우신 (예수)를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를 부정하는 그리스도교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려고 하기 이전에 우는 사자에게 물려가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주 똑바로 차려야 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보면 (사람)의 생각이 (하느님)의 섭리를 헤아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