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P S

( G P S )

전에 없던, 어이없는 일을 자주 겪게된다.

소공동체 모임은 저녁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밤 운전을 하기 마련이다.
전에도 몇차례나 다녔던 교우들의 집이므로 그 쯤이야 하는 건방진 마음으로
집을 떠나서는 그 동네 인근까지 일사천리로 도착하고나서는 한 시간 씩이나
골목길을 뱅뱅 돌며 헤메기를 올 들어 몇차례나 했는지 모른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 했던 옛 선조들의 체험에서 나왔을 명언이 있음에도
(나)를 너무 신뢰하는 일종의 교만으로 그 댓가를 치른 셈이다.

내 차안에는 (형편이 아니라서 라고 말하고 싶진 않고) 그 흔한 G P S 가 없다.

예전에 피난을 가서 시골에서 밤길에 이웃 마실을 갔었을 때가 생각난다.
달밤이 아니면 정말 아녀자들은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모를 칠흙같은 밤에 나설려면
조그만 등잔불을 들고 떠나곤 했었다.

아마 그것이 당시의 GPS였을 것이다.

그 등잔불이란 것이 고작해야 몇발자국만 밝혀줄 뿐 그야말로 별 도움은 아니다.
그렇게 걷다가 저편에 건너마을 한 집에서 불빛이라도 보이면 얼마나 반갑고
큰 의지가 되는지 모른다.

어쨋건 고생끝에 찾아들어가 반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역시 상대적으로 쉬웠다.
내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차앞에 헤드라잇을 켜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채운다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빛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등잔불?
자동차의 헤드 라이트?
내 머리안에서 반짝하는 그 빛을 믿는 나?
GPS ?

이 모든것들은
때로는 나를 도와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오히려 헷갈리게도 할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 고운 목소리로 ” 다음 신호에서 좌측으로 도세요.”
또 이 골목에 들어서면 바로 세번째 집입니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안내도 언젠가 도시계획으로 길이 바뀌고 나는 아직도 옛 쏘프트웨어에 의존해서 가고 있게 된다면 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자신있어 보이고 자신만만한 (나)는 기계보다 더 확실하게 믿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여러번 시행착오를 하며 물릴수도 없는 실수 때문에
가슴을 치며 낙담을 하는가?

지금처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은 과연 신롸할만한 걸까?

병원에서의 실수나 고의가 얼마나 억울한 생명을 욕보이고 있나?
그렇게 똑똑한 컴퓨터는 어떻게 주인도 아닌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나의 은행금고에서 마음대로 돈을 내주고 있는가?

과학은 때로는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도리킬 수 없는 곤경으로 몰아가기도 할 것이다.

그것들은 좋아보여도 피조물이며 피조물에 의하여 만들어진 불완전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만 온전히 의존하는 삶은 불확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의 것은 모두 배척하고 버리고 외면해야만 한단 말인가?

지혜를 필요로 할 것이다.
지혜는 나의 머리에서 나온 그 꾀가 아닌 하느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낱낱이 일러주시는 그 지혜에 의존한다면 우리는 길을 잃어 헤메이는 일을 예방하게 될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빛) 이신 하느님이 밝혀 주시는 그 G P S 를 따라서 길을 간다면  우리네 삶의 여정에서는 길을 잃어 낭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자신을 믿고 교우네 집을 찾아 나섰다가 여러 차례나 고생한 어리석은 나는 믿는다.

아 ! 그 저녁따라 집을 용케도 찾아 돌아온 일이 얼마나 감사했었는지.

                                                    * *

( 산 너머 남춘에는 )

”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

그런 유행가도 있었다.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오랜 세월 지내는 냉혹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이웃집 마실도 자주 오가며 움식도 나누고 이웃과 지냈던
마음들이 따스했던 그 시절에는 전화도 없고 교통편도 쉽지않아 산도 아닌 조그만 고개 넘에에도 어떤 이들이 사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나도 태풍의 피해를 당하여 고통중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완행열차와 시외뻐스를 켳차례나 갈아타며 시골의 친구를 찾아 갔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별볼품 없는 꺼벙한 학생 하나가 왔는데도 서울 학생이 왔다고 거의 온동네가 나서서
반겨주며 태풍을 만나 고통중에도 멀마나 매 끼니 정성껏 대접을 해 주던지 당체 내가 위문차 온 것인지 그들이 날 위문하고 있는건지 당혹스럽고 혼란했던 경험이었다.

요즘처럼 i phone 도 없고 Dish 를 달아라,  아니 direct TV 가 더 좋아,
우리걸로 바꾸면 3개월 동안은 아주 싸게 해 줄께. 그러면서 번갈아 가며 사람을 꼬셔대는 그런 요물도 하나도 없었지만 그 대신 그 시절엔 좋은 인심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뭔 다른 얘기를 한다고 시작한 게 엉뚱한 샛길로 들어가 까딱하면
본론은 잊어버리고 삼천포에 도착할뻔 했네.

진짜 하고싶었던 얘기는
그 기똥차게 똑똑하다는 물리학자 말이다.

Steven Hoking ?

과학에 관한 지식이라면 한번 똑부러지게 많이 안다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많은 이도 그렇게 동의하는 거 까지는 누가 뭐라하겠는가?

그런데 세상 똑똑하다는 사람은 그래서 탈일까?
자기 푼수를 모르고 길을 잃고 헤메고 있으니.

” 하느님, 천국, 지옥. 이런 것들은 모두 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꾸민 소설이다.”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너무 똑똑하다 보면 이렇게 햇가닥 정신 잃고 길도 잃게 되는 걸까?

하느님이 어느 사람의 입방아로 (계시기도 하고) , 또 (안 계시기도) 하는 분이신가?

아마도  (빛)을 볼 수 있는 그 (마음)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의 힘으로는 또는 우리 사람의 육신의 눈으로는 빛을 볼 수 없다.
빛은 어느 물체에 비추어진 것으로나 또  밝은 것으로 미루어 감지할 뿐 빛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가 바라는 어떤 형체로 만나 뵐 수가 없다.
그 분이 (빛)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빛이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곧 빛이되는 길이다.
빛은 빛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뭉이다.

예수님은 오늘도 나에게 빛이 되라 하신다.
그리하여 어둠에 가려진 세상을 밝히라고 당부하신다.

호킹 박사님.

산 너머 남촌에도 누가 사는지 알기 어려운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의 지성으로, 사람의 머리로 하느님을 이해하려고 하시나요?
과학 이전에 겸손을 먼저 배우시기 바랍니다.
겸손은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도록 나를 비우는 것이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세상의 지식이 나를 꽉 채우고 있어서 하느님이 들어서실 자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아마도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두꺼운 물리학 책이기 보다는 골방에 들어가셔서
눈을 감고 하느님을 만나기를 목마른 자처럼 갈구해 보시라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같은 자의 권유가 아닐까 감히 바라며 기도합니다.

자동차에 달고 다니는 그 G P S 말고 하느님께 안내해 드리는 진정한 G P S 를 마음안에 장만하실 수 있기를 오늘 저녁에 당신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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