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가수가 예쁜 목소리로 나에게 호소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노래하는 그 마음 또한 아름답겠죠?
“가슴이 울컥할때면,
한낮에 몰래 숨겨두었던,
한줌의 햇빛을 꺼내 봐,
널 지켜줄꺼야.”
이즈음 어느때보다도 우리의 가슴을 울컥하게 해주는 일이 많아 보입니다.
세상이 온통 어지러워 보이고 가슴을 아프게 해주는 일이 많아 보입니다.
사람을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것보다 더 쉽게 마구 죽입니다.
나에게 해꾸지한 일도 없는 사람들을 차라리 모기 목숨보다 가벼히 여깁니다.
마구 죽입니다.
지난번에 낙태반대 피켓을 드는 행사가 있다고 해서 가보았지요.
한국에서 연쇄살인범이 여럿을 죽이는 끔찍한 일에 경악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낙태시술 보건소에서 “엄마, 날 살려주세요.”
그런 호소 한 번 못해보고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엄마 자궁안의 어린 생명들이 일 년에 백이십만명이 되어도 몇 사람만 나와서 눈물로 호소할뿐 신문도 텔레비죤도 그런 것은 이제 뉴스도 아닌 모양입니다.
이제는 “무조건 다 바꿔!” 그렇게 해서 새로 대통령리 된 사람은 낙태를 얼마던지 맘대로 할 수있게 하고 줄기세포도 맘대로 하도록 해준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 사람을 손벽치며 열광하고 링컨같다하고 킹목사같다합니다.
” Please give me a break. You are NO Lincoln, No King. You are not even kidding me but hurting me. Go away from me please.”
그런데 왜 저는 자꾸만 그 사람이 바로 연쇄살인마같이 보이고 루시퍼의 꼬붕같다고 생각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세상은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요.
캔사스 시티에서 큰 건축회사에서 평생직장으로 알고 삼십년 넘도록 열심히 일해오던 친구가 전화를 해 왔습니다.
바로 옆방에서 자기처럼 성실했던 동료가 출근했던 어느날 사장실에서 부르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집으로 가라고 하면서 내일부터는 나올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사무실로가 소지품도 챙길 틈도 주지않고 해고 시켰다면서 슬프고 불편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 친구도 또 언제 그렇게 사장실에서 부를지 모르겠다면서 한숨을 쉬었습니다.
해고당한 동료는 충격으로 집의 전화줄도 뽑아놓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모양이라고 제 일처럼 걱정합니다.
돈을 빌려줘야할 은행이 오히려 돈을 달라고 정부에다 조르는 어fu운 세상이 되어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지러워 보이고 힘들기만 한데 (희망)을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절망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한줄기 빛으로 오시어서 어둠에 머물지 말고 빛으로 나오라 손짓해 주시는 한 우리에게는 절망은 없습니다.
분명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더 나아갈 곳은 없어보여도 우리 스스로가 포기하여 절망하지 않는한 반드시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은 움쭉할 수없다고 생각될 때 그 때는 나에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하리라.”
사순절의 십자가의 길 순례기도에서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우리는 용기를 잃지맙시다. 기운을 냅시다. 희망을 바라봅시다.
이 추운 겨울이 곧 지나가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부활로서 희망을 보여주시는 바로 그 모습으로 다가 오시겠지요.
우리는 다 함께 성지를 높이들어 “호산나!”로 맞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