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엔
발이 시려워 몇 번이나 뒤척이며 잠을 설쳣던 것 같다.
열어둔 걸 잊고 잠 들었던 그 창문 새로 어느새 가을이 살며시 스며 들어왔었나 보다.
그새, 벌써… ? 싸늘한 게 제법 춥기까지 했다.
불 지핀 온돌 아랫목이 생각나고 따스한 엄마의 마음이 그리워지는 계절, 가을이 방안에까지 들어와 있었다.
이맘때면
사람들이 사랑을 더 많이 얘기하는 걸 보면 아마도 따뜻한 아랫목같고 그래서 나도 한 번 그안에 잠겨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나기 때문일까.
( Le Petit Amour, 유치스런 풋내기들 사랑 )
프랑스영화,
이제 막 열 다섯살 먹은 Mathieu는 어찌됐는지 부모가 없고 할머니한테 얹혀 살며 중학교에 다닌다.
귀엽게 생기고 철부지 틴에이져.
바로 이웃에는
어린 동생이 있는16 살난 딸과 사는 마흔살 난 이혼녀, Jane가 있다.
소위 막되먹은 것같지 않고 평범한 가정주부라 해야겠는데 천진스런 건지 풍만스런 마음을 소유한 사람인지…
좌우간 어느 때부터인지 자기딸 보다 한살 아래인 중학생에게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고 그래서
그걸 숨기고만 지낼 수 없었던 이 불란서 여성은 그 아이에게 고백하고 아이는 아직 이성간의 사랑이 뭔지도
모를 것만 같은데 ”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 말하고 둘은 그때부터 마주칠 때마다 사랑의 눈을 마주한다.
아무리 개방적인 프랑스라도 둘은 어색하고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만 포응하고 있는 장면을 딸에게 들켰다.
충격받은 딸이 저항하고 학교에도 알려져 이 여인을 소환하고 난리가 났다.
아이의 가족이 다른지역 학교로 전학시키고 딸은 엄마와 살기싫다며 친척집으로 옮겨 나가고 만다.
둘 사이는 그런식으로 걱정스런 주변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물리적으로 헤어지고 말았지만
환경이 바뀌고도 둘은 한동안이나 서로 그리워하지만 시간은 서서이 지나간 이야기로 잊혀져 간다.
남녀간의 사랑.
눈으로 볼 수없는 마음, 감정이 지배하는 사랑을 무슨 수학공식이나 영어문법의 원칙처럼 잣대로 재서
그 틀안에 맞추어서 진행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자고 한대도 그리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국경이 없는 것이 남녀간의 사랑이라 말하게 됐었는지 모른다.
내마음이 멈출 수없이 이끌리는데 끓는 물처럼 활활 타오르는 이들에게,
공자왈,… 맹자가 이르기를…
유교의 말씀이, 도덕의 가르침이 귀에 가 닿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삼가야할 일이 있다.
멈추어야할 것이 있다.
내마음을 다스려야할 책임이 주어진다.
유치스런 내용일지도 모를 위의 영화스토리를 예로 드는 이유는 현실에서 그 유치한 일들이 흔히 일어나고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우리가 들어 아는 일만해도 얼마나 해괴한 인간관계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을까.
남자끼리, 또 여자끼리도 합법적으로 혼인관계를 맺어 함께 살면서,
” 여보”, “당신” 그렇게 부르며 아이는 입양해서 자녀로 키운다.
둘 다 남자이거나, 둘 다 여자인데 아이는 어느쪽을 엄마라고 아빠라 불러야 한단 말일까 ?
하느님이 만들어 주시며 지키라 하셨던 계명과 인간양심은 우리들 사람 스스로가 무너뜨리고 있다.
영화안에서도 벌써 사회문제로 크게 나타나지 않는가.
무척 감정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인 프랑스인데도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둘은,
”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무슨 상관이예요? “
그렇게 항변하겠지만
벌써 자신들의 가족이 불편해하고 불안해져서 포용하지 못하고 가족관계 마저 깨지고 있다.
가족간의 질서가 무너지고 그들이 속한 사회질서가 깨진다.
그렇게되면 사랑하고 있다는 둘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지게 된다.
둘만의 행복을 찾지 못하고 그것은 곧 궁극적으로 둘도 불행을 만나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랑이 되려면 가족이 함께 기뻐해주고 그 사회가 포용할 기본은 무터트릴 수 없다.
” 남들이야 뭐라든 ” 그렇게 되면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둘만이 독도같은 곳에 가 영원토록 숨어살 수없을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동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앞에서 서약하는 혼배예식 말고도,
일반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든 젊은 쌍들이 주례가 묻는 말,
” 좋을 때나 나쁠 때도 변치않고 영원히 사랑하겠습니까 ? “
그물음에 ” 한번 생각해 볼께요. 글쎄요. Maybe or maybe not.” 그렇게 답하는 이들은 없다.
둘이 모두,
” I do. “, ” I do. “
답 끝에 확실한 Period ( . ) 가 붙기 때문에 분명하고 확실한 답이고 약속이 된다.
얼마나 많은 부부가 그 약속을 여러 이유때문에 저바리기게 되는가.
그 가족이나 주변에서 모두 영원히 잘살기를 기원해주고 있음에도.
영화속의 둘은 그런 보호 환경조차 무너진 경우이다.
( Today is the day )
밤에 창을 열어놓고 잠 든 바람에 감기를 얻을뻔 했기에 잊기전에 닫으려고 창앞에 갔다.
제법 높은 오층에 살고있는데도
창앞에 서면 그보다도 더 높게 자란 고목들이 전망을 가로막고 있어서 답답한 마음이될 때가 많다.
그래서 언젠가,
눈을 감은채 저 나무들을 다 잘라내고 그 앞에다 꽃밭을 만들고 물을 퍼다 담아 바다처럼 넓힌다면
그 전망처럼 내마음조차 확 트일지 모른다는 그림을 머리안에 그렸던 일이 있었다.
눈을 감고 서 있었는데 환상속에서는 정말 그리던 그런 풍경이 일어나고 있었다.
늘 게으르고 그리고도 또 나태한 나는 그날 아침에도 해가 솟아오르도록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는데
부시시한 눈을 비비며 창가에 선 나에게 저만치서 뉘가 나에게 손을 흔들어 반겨주는 이가 있었다.
” 아, 아 ! “
나는 입을 담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서 손을 흔들어 반겨주는 이는 주님이셨다.
예수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손을 저으시며 이 게으른 자에게도 ” 사랑한다. ” 고 말씀하고 계셨다.
내가 만들어낸 물가의 모래밭에는 발자국도 나 있었다.
아마도 새벽녁에 이 게으른 자의 잠자리곁에도 찾아오셨던 걸까..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슴이 터질 것만같은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게으르고 부끄럽고 못난자에게도 구분없이 비를 내려주시고 똑같이 햇볓을 비추어주시는 주님.
당신을 십자가에 달고 못을 박는 자에게도 사랑한다고 하시는 주님.
에로스의 사랑, 찰라적인 욕망을 좇아 영원을 너무나 쉽게 저바리려는 이세대에게 주님께서 아가페의 참사랑의 뜻을 새삼 일깨워주시고자 창가에 찾아오셨나 보다.
벌써 배를 몰고 고기잡이에 나선 저 부지런한 어부,
일터로 떠나기위해 어둠을 털며 나서는 저 많은 젊은이들,
아직도 파자마바람에 창가에 섰는 이 게으른 자는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을 오늘의 삶을 어떻게 꾸려야할지
새삼 다짐 하는 그런 아침이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주님이 죄인을 찾아오신 날.
내가 주님을 만나는 날. Today is the day.
( 이 가을엘랑 )
유난하게 추웠던 그 겨울엔
마음마저 얼어 이 몸이
불 지핀 아랫목에서 딩굴며 지냈었습니다.
봄의 소리가
창문에 찾아오자 뛰쳐나와 이 몸은 산으로 들로 꽃밭을 뒤지며 헤메고 있었겠지요.
쑤아 쑤아
그렇게 소리내며 들고나는 파도의 유혹에 이 몸이 넘어가
창백하게 메마른 가슴을 당신앞에 숨기고자
몸둥이만 볓에 검붉게 그을려 돌아왔나이다.
이제
여전히 돌아온 가을의 거울앞에서 차마
당신께 얼굴을 들 수없어 발아래 엎드려 빌고 있나이다.
제발 이 가을엘랑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아니고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떨리도록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받아주소서, 나의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