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ppy birthday to me ! )
그날
나는 여느 때처럼 아침 한나절 볼일을 보고 돌아오니 점심때가 훌쩍 넘어 있어서 배가 많이 고팟다.
밥을 올려놓고 기다리기엔 내 배가 참아줄 것같지 않았다.
찬장을 여니 마침 라면이 있었다.
이럴때 보면 누군지 라면을 참 잘도 궁리해냈다 싶은 물건이다.
물만 끓이면 손쉽게 후딱 배를 채울 수 있으니 말이다.
후루룩 불어가며 김치와 곁들이니 좋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제법 즐기고 있는데 전화가 울었다.
딸아이였다.
” 좀 일찍 전화한다는 게 늦었어요. 회사일이 너무나 바뻐서… 아빠. 늦은 점심이지만 이제라두 얼른 나오실래요? “
” 난 지금 막 먹구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식당에는 왜 ? 무슨일 있냐? “
” 아이구, 또 잊었어요? 아빠 생신이잖아 ! “
기왕 늦었으니 퇴근길에 들리마 하고는 끊었다.
그렇게 진수성찬처럼 맛있게 먹던 라면이었는데 전화를 받고는 괜히 마음이 달라지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 짠해지고 라면맛도 떨어져 젓가락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 Happy birthday to me, Happy birthday to me……. “
해피 ?
과연 해피, 행복은 무엇일까? 상을 물리고 소파에 앉아 생각해 본다.
바로 조금전에 시장끼에 라면을 먹으며 나는 만족감에 감사를 느끼고 행복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전화가 걸려오자 나는 곧 불행한 마음으로 돌변하여 울적해지고 말지 않았나?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똑같은 음식에 전화를 사이에 두고 불과 몇분 사이에 내마음은 행복과 불행 그 둘 사이를 오고가며 갈팡질팡 하고 있다.
그러면 전화때문인가? 전화를 건 사람 때문인가?
그것도 저것도 다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그건 바로 나자신의 마음때문이였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딸아이가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거나 라면에 다꾸앙 한쪽으로 끼니를 삼거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며 그런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해주는 절대적 요소롤 작용하게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나의 건강하지 못한
마음탓일 것이다.
모두가 생각하기 나름, 마음 먹기 나름.
그래. 이따가 아이가 퇴근길에 들리면 차를 두잔 끓여놀고 미안해 할지도 모를 그아이를 오히려 내가 재미있는 얘기나 생각해
두었다가 아이를 웃겨주고 기쁘게해 주어야지.
옳지 이만하면 되었다 훌륭하고 행복한 생일이 되었다.
( 겨자씨 )
내친구중에 재산을 모은 부자가 있다.
아마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청년 보다는 훨씬 더 큰부자일지도 모른다. 본인도 자기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만큼 이라니까.
자라면서 우리는 서로의 집에 아무때나 들락거리며 밥도 먹고 잠도 자도 흉이 안될만큼 가까이 지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아이가 퍽 순박했던 것같다. 재산가가 되더니 다른 사람처럼 되었다.
친구를 일정 거리감을 갖고 대하는 건 그렇다 치고라도 듣기로는 혈육간에도 사나운 사이가 되었다 한다.
많은 재산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돈이 그런데로 몰고가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했을 수는 있었겠지만
역시 그건 그자신의 마음이다.
재물.
그것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또는 나쁜사람으로 만드는가?
결코 그렇다 말할 수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피하기 어려운 유혹일 뿐이다.
재물, 그자체는 축복도 죄악도 아닐 것이다.
실행하여야 할 선행의 기회앞에서 선행보다는 물욕을 선택하는 (나)의 마음. 그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
나를 좋은 사마리아사람으로 또는 부자청년으로 갈라놓는 두갈래 길이라 생각된다.
불경에는
깨알보다도 작은 겨자씨 안에 높고 큰 수미산이 들어있다는 말이 있다.
예수님은 (나)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졌더라면 그 큰산도 옮겨놓은 수있다 하셨다.
또한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 가 행복하다고도 하셨다.
그 작은 겨자씨와 그 큰 산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선) 도 (악)도 그 시작을 겨자씨만한 일에서 시작하여 큰산과 같이 큰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내자신의 경우를 비추어 더듬어보면 무슨 일이든 큰 것을 도모하여야 결과도 큰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기는 버릇이 있다.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분분이 것을 알게된다.
우리 성당앞 골목에서 남들이 버린 휴지를 주어서담는 그 아저씨.
그는 아주 작아보이는 선행을 아무에게도 칭찬을 받으려거나 알려지길 바라지도 않으면서 실행한다.
그런 겨자씨같은 작은 선행들이 모여서 보다 좋은 세상, 평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 그와 반대로
교회에 와서 기도를 바치며 미사전례에 참여하고도 그 아저씨가 줍고있는 거리에 남들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아주 작은 담배꽁초를
버리는 이가 있다면 그 작은 나쁜 버릇이 자라서 큰산처럼 악행을 일삼게 됮 수도 있을 것이며 그런일들이 모이면 그때 이세상은
더 나쁘고 흉흉한 가라지로 뒤덥힌 세상을 이룰지도 모른다.
옳지못한 방법으로 모은 돈, 또는 마음에도 없이 억지로 체면때문에 성전에 바치는 헌금이라면 아무리 큰 액수라해도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을 역겹게 하는 일일지 모르며 과부의 동전 두닢처럼 정성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라면 주님을 기쁘게해 드릴 것이다.
모두 다 나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의 문제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이웃들의 일을 말하기 전에
나는 오늘 해가 넘어가기전에 어떤 겨자씨만한 선행이라도 찾아할까를 걱정하고 실행하기 위해 말은 이만 줄이고 일어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