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료와 인스턴트가 신앙생활에 미치는 영향




조미료와 인스턴트가 신앙생활에 미치는 영향

 

많은 사람들이 조미료를 싫어하면서도 맛을 내기 위해서는 조미료를 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군에 있을 때, 저도 그랬습니다만 제 바로 밑의 졸병은 조미료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당시가 70년였고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 군대 밥은 그리 맛 나는 식사도 아니었고 젊었기에 왕성한 식욕을 가진 장정들에겐 늘 턱도 없이 모자라는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맛없는 국이라도 조미료만 조금 넣으면 그 변해지는 맛이란 상상을 초월하기에 조미료는 아주 중요한 재산(?)이자 보물 1(?)였습니다. 내 바로 밑의 졸병인 친구는 두메산골 촌놈이라 군에 오기 전까지 조미료가 있었는지 조차 몰랐던 모양입니다. 내가 그 친구 국에 조금 넣어주고 또 나도 몰래 국에다 넣어 먹은 것을 보고 난 후, 끼니 때 마다 내게 와서 요술 가루를 달라곤 했었습니다. “김 상병님 이 미원은 요술쟁이래요. 싱거운 것에 넣으면 간이 맞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짠 것에 미원을 넣으면 싱겁게 되는 것은 이해가 안 돼요. 이거 정말로 요술가루에요, 그리고 이거 만든 회사 정말로 복 받을 회사에요…….”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 갖은 양념을 하자면 복잡하고 또 시간도 많이 듭니다. 거기에 비해 조미료를 넣어 음식 맛을 내는 것은 아주 간편한 방법입니다. 마치 국수를 삶아 멸치 국물을 내고 혹은 비빔국수를 먹기 위해 양념장이나 양념 고추장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손쉽게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 먹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기도하면서 문득 이런 추억이 회상되어지는 것은 혹시나 나의 신앙생활이 간편하고 쉽게 맛을 내는 조미료 같은 생활이고 인스턴트 같이 편한 것만 쫓아 사는 삶이 아닐까 싶은 반성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저를 도와주소서. 저는 홀몸, 당신 외에 아무런 구원자도 저에겐 없습니다. 제 생명은 지금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 선조들의 글에서 읽은 대로 주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드는 모든 사람을 영원히 구원하십니다. 주님, 저의 하느님, 외로운 이 몸을 도와주소서. 저에겐 주님밖에 없습니다. 고아인 저를 도와주소서.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을 끝장나게 하소서. 저희 원수들의 손에서 저희를 구하시고 저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며, 저희의 아픔을 낫게 하소서.”

 

내 신앙생활 안에서 이렇게 하느님께 간청 드릴 수 있는 위기가 있었나? 또 급한 마음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독서입니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미국에서 늦깎이로 신학을 공부할 때, 또 처음 디트로이트 피정 집에서 피정 자들에게 영어로 강론을 할 때 아마 에스텔 같은 절박한 마음이었다고 기억이 됩니다. 어느덧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지금, 절박한 마음을 잃은 대신 편안함에 안주하려하고 편리함만 찾는 게으름이 자리 잡아가는 것은 아닌지 슬며시 걱정되어집니다.

 

기도는 사실 이렇게 절박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싶습니다. 쉽고 맛있게 조리할 수 있는 조미료가 있음으로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조미료에 입맛을 맞추다보면 우리의 생활이 정성스러움 보다는 편함으로 흘러 절박한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우는 조금 지나친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쉽게 지나쳐 버릴 문제도 아니지 싶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기도란 그저 빌기만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기만 해서도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마태오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비는 것과 믿는 것 보다는 기도 하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 또 바랄 것을 바라는 깨어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전하고 있으며 믿는 사람들이 알아차려야 할 사랑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조미료

무좀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을 만큼 독한 조미료가 건강에 절대로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편하려고만 하는 마음과 내가 바라는 것만 바라는 기도는 절대 우리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또한 쉽게 먹을 수 있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Fast Food인 Instant 식품이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리라곤 생각 할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이든 빨리 이루어지고, 간편하게 들어지는 기도와 신앙이 절대 우리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조미료 없이 끓여진 맛난 청국장을 먹으며, 또 오래된 추억을 통해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 Fr. 김 두진(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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