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가진 부유함

가난이 가진 부유함
 

세상에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지 싶습니다.  가난은 모든 이들이 퇴치하고싶은 세상의 악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다지만, 누구도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가난은 우리 같은 수도자들이 살아야 할 최대의 덕목이지만 참 가난을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참 가난은 그저

궁핍하고 없는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도 가난 자체를 좋아하신 것은 아닙니다. 가난이 가진  부유함

을 좋아하신 것이지요. 가난이 가진 부유함!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가난이 가지고 있는 부유함은 분명 있

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하느님의 이름은 야훼(Yahweh)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여호아(Yehowah)로 부르는 이 이름의 뜻은 두

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야훼는 존재하다 (hawah 또는 hayah)라는 동사의 제 일인칭의 형태로서 나는 존재 한다로 설명될

수 있고, 인간의 입장에서는 2인칭을 써서 그분은 존재 한다또는 그분은 다른 것들이 존재하도록 하시는 분이시다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을 토대로 “그분께서 모든 것들이 존재하도록 하시는 분”이시라면 모든 사물의 주인이 되십니

. 이런 주인에게 가난한 자들이 빌어 얻는 것이 신앙입니다. 아나윔에 대한 설명을 신학 사전을 통해 보면, 구약 성서에서

는 궁핍한 자, 가련한 자, 억눌린 자, 핍박받는 자(아나윔, Anawim)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가난은 경제적 사회적인 상

태보다는 정신적 성향이나 마음의 자세를 말하고 구약은 가난이 지니는 정신적 부()를 우리에게 드러내 주며, 신약은 가

난한 자가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을 특권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부자와 가난한 나자로의 이야기 얼핏 듣기엔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가난했던 나자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하

늘나라에서 사는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이 이야기는 바리사

이들을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현세 생활에서 부자로 살았다고 해서 불붙는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사

이들이 내세우고 있던 율법에 대해서 율법을 지킴이 모든 것의 우선이 되어짐으로 잊어버린 책무에 대해서 질책하고 계십

니다.

 

성서를 잘 읽어보면 부자는 사실 몹쓸 짓을 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가진 재산으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

며 호화롭게 사는 것이 어찌 못된 일이겠습니까? 또한 그 부자는 나자로가 부자의 집 앞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어먹지

못하게 구박하지도 않았고 학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자가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자신을 위해서

만 쓸 줄 알았고, 집 앞에 있는 나자로에게 무관심했던 것이지요. 죄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관심과 법의 정신인 사랑을 잃어버린 마음입니다. 사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의 규정을 잘 지킬 줄 알았으나 그 율법

에 얽매여 율법의 본정신 즉 사랑을 잊어버리고, 또 잃어버린 것입니다. 율법의 글자 보다 더 중요한 율법의 정신을 잃은 것

이지요. 외울 줄은 알았으나 그 뜻을 이해 못하는 부유의 가난을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예수님께는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

이었겠습니까?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늘 변화를 추구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변화란 무엇인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

. 하물며 마음이 가난하다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부유한 자들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안주하려 합니다.

들에게 변화란 무엇이 없어지는 것을 뜻하지 때문이지요. 해서 변하려 하지 않은 사람은 부유한 사람으로 그 생활에 안주하

고 자기에게만 집중함으로 사랑에는 무관심하게 되어질 수 있습니다. 하물며 마음까지 부유하다면 어떻겠습니까? 신앙생활

을 열심히 하는 사람 중에 자기 신앙에만 열중한 나머지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교회에 나오는 횟수와 봉사 횟수에 얽매여 사

랑을 잊어버리고, 관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오늘 복음이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가난하다고 하늘나라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이 가지고 있는 부유함을 몸에 익힐 때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면 우리 모두는 집 없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복된 사람

이라고 말하고 그들을 부러워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시카고 남쪽의 가난한 동네에 가서 가난한 사람

들은 행복하다고,  가난한 여러분들은 죽어서 천당 갈 것이니 참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분이 있을까요?


 

가난의 부유함을 알지 못하고, Anawim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그저 숫자놀음에 목숨 걸고 글자에만 충실해 그 정신을

이해 못하는 청맹과니에 불과 한 것을, 부유의 가난을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성서는 우리게 가난의 부유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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