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축일은 1920년에 처음으로 제정되었습니다.

20세기 현대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가정의 가치가 훼손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정이 우리모두에게 중요한 이유는 생명과 사랑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며 사랑의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산업의 시작으로 인해 생산의 효성과 생활의 편리함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가정의 중요성과 의미를 점차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가정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기 위해 성가정의 축일은 모든이들에게 중요한 축일이 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며 배우는 곳이 가정입니다. 따라서 오늘 축일의 의미는 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자는 것입니다.

 

인간은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많은 민속종교들은 두려 움에 대한 불안감을 토대로 세워지게됩니다. 산에
가면


산신이 무서웠고, 바다에 가면
용왕이 두려웠으며, 동네에 있는
고목을 보면 목신을 생각해 것이 민속종교의


시작 이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불안하고 약하기에 산신, 용왕, 목신,
이런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서 재앙을


피하고, 행운을 얻어낼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동네의 선황당도 그런 행운을 비는 곳이 아니었습니까?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은혜로우신 하느님 봅니다.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예수님의 행적에서


못하면, 세상은 그저
뺏고, 비방하고, 이기고, 지배하면 사는 아비규환의 집단일 뿐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 이라고 말합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스스로 기고만장 하는 길을 찾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행복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 생각하면 하느님을 믿는


것도, 하느님의 힘을
빌려 많이 갖고,
강하고, 기고만장 있는 길이라 착각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구원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 .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님 안에 하느님이 주신 구원, 모든 사람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는 데에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시메온이 예수님 안에 읽어낸 구원,
모든 민족들 앞에 마련하신 구원 혼자 기고만장하는


그런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시선으 자기 주변을 보면서 은혜로우심을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뒤를 따르 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


.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입니다.(마르 8,34-35).


기고만장해서 혼자 강하고 혼자 갖고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
목숨 아껴서 구원에 이르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성가정 축일에 우리는 생명이 은혜롭게 태어나고 삶을 배우는 곳이 가정이라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 시메온이 말한 구원,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 배우는 곳이 가정입니다. 십자가가 있어도,
목숨을 잃을


 같이 막히는 고통의 순간들이 있어도, 우리의 삶은
무상으로 주어진 은혜로운 기회입니다. 원망과 분노로만


 허비하지 말아야 생명입니다. 또한 경쟁하고 지배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야 이웃입니다. 생명의 은혜로


움에 대한 인식은 인간이 관대하게 아름답게 살기위 기본조건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인생의 은혜로움을


배우고  실천하는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성가정은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이 살아 있는 가정을 의미합니다. 가족이


서로
돕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서로 격려하며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곳이 가정입 니다.



그래서 오늘 주보에는 오늘 2독서에서 읽은 말씀을 바탕으로 성가정 기도문도 함께 게재합니다.

 


기도를 통해 생명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그리고

은총의 하느님을 닮아 모든 가정이 거룩해지기를 바랍니다.

 

                               – Fr.
두진
(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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