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대림 4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준비하면서 읽은 복음에서

 거론된 가브리엘 천사는 유대교 묵시문학 저서 중 하나인 다니엘서(8,18)에 언급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천사입니다. 그 천사는 마리아에게 기뻐하여라.’라고 인사합니다. 그 인사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스바니야가 예루살렘을 향해 한 말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니 기뻐하라(3,14)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 안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에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호칭은 사무엘서

(1사무 1,17-18)의 엘리가 장차 사무엘의 어머니가 될 한나에게 한 말입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엘리가 그에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은총이

 가득한 이라고 불렀습니다. 루가복음서는 마리아의 수태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된 일이라고 말하기

 위해 가브리엘 천사가 이 인사말을 썼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묻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신다.’고 답합니다. 이 말은 성령이 내려 오셔서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창세기(1,2)

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세상이 창조되었듯이, 성령이 새로운 생명을 마리아 안에

창조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엘리사벳에 대해 언급하는데,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말과 더불어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없는 여인이었지만, 아이를 가진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늙은 여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온

천사가 일 년 후에는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자, 사라가 그것을 엿듣고, ‘다 늙은 몸으로

어떻게 아기를 낳으라고하면서 웃습니다.’(창세 18,14). 그때 천사는 하느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이사악의 어머니 사라

그리고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이 세 여인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한나와 사라는 구약성서가 언급하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들이고, 엘리사벳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하느님의 특별한 배려로 아이를 가지게 되어, 이스라엘과 그리스도 신앙 역사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을 낳았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마리아가 처녀라는 말씀도 아이를 가질 수없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즉 복음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은 사람의 힘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 불가능한 곳에 하느님이

은혜롭게 베푸신, 구원의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성서는 신앙의 책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분으로써, 구약성서의 이사악, 사무엘, 혹은 세례자 요한과 같이 사람들의 힘으로 할 수없는 것을 하느님의

은혜로 베푸신 생명이라는 뜻입 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일로 보고, 처녀인

마리아가 기적적으로 잉태하였다고 말하면, 예수님은 인류 역사 안에 흔히 있는 영웅 탄생 신화들 중

하나처럼 신화적 인물로 전락되고 맙니다. 우리나라 개국 신화에도 기적적 탄생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단군을 비롯해서,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모두 기적적 탄생 신화의

주인공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잉태사화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하는 것은 루가복음에서 말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인간의 틀 안에서 베푸신 특별한 구원의 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하기 위해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를 처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사람들의 힘으로 생겨나신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성령이 마리아에게 내려오신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은 하느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새롭게 준비하신

분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살아서 보여준 자비와 보살핌 안에 하느님의 일을 읽어낸

초기 신앙인들이 그들이 믿고 있던 바를 구약성서의 언어를 빌려 만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탄생을 해마다 기념하면서 하느님이 인류역사 안에 은혜롭게 새로운 일을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뻐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달은 하느님의 일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겠다고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대림 4, 앞으로 며칠 후면 맞이할 성탄이 하느님이 세우신 계획안에서 불가능이 없는 하느님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이루어짐을 기억하며 오시는 임마누엘의 그분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마라나타, 어서 오소서 주님!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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