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희생,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사랑



사랑, 희생,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사랑


제 어머니는 누룽지 밥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어떤 날에는 아침, 점심 혹은 저녁에도 누룽지를 끓여 큰 바가지 같은 그릇에 담아


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내의를 입으셔도 꼭 편한 남자 내의를 고집하셨습니다. 형이 입어 늘어 날대로 늘어 난 내복은


어머니의 가장 편한 내의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두부나 콩나물을 사실 때 동네 아줌마하고 싸움을 불사하면서까지 깎아내리는


이름 난 구두쇠였지만 자식들에겐 늘 부자였습니다. 이게 내가 어린 시절에 알던 우리 어머니였습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누룽지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과 입는 것은 당신 것보다는 좋은 것 이여야 하기에 당신의 자리는 늘 마지막


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송하고 또 죄송한 마음,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마음으로만 말


입니다. 지금이라도 “감사합니다. 어머니” 하고 싶어도 해 드릴 어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아 더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머니 하면 늘 희생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 할 줄 알았던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일생은 가이없어라하는 노랫말처럼 희생의 삶입니다. 어머니의 희생은 사랑입니다. 자녀를 사랑하기에 짊어지는 거룩한 십자가 입니다.




 


희생이란 영어는 Sacrifice입니다. 그러나 이 “Sacrifice”제사혹은 제물이라고도 번역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것은 십자가의 제사, 곧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신 십자가상의 제사는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신 희생, 제사, 그리고 제물입니다. 사순 4주일의 복음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자유의 약속의 땅으로 가는 도중에 하느님과 지도자인 모세에게 불평하면서 벌어진 민수기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이야기 입니다.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민수기 21,5-6


 


하느님께서 보내신 만나도 지난날의 화려함을 기억하는 그들에겐 보잘것없는 양식으로 전락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 뱀을 만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 뱀은 교만의 상징입니다. 교만으로 서로를 물어뜯고 서로를 해칩니다. “아 옛날이여~” “내가 왕년에………” 현실을 살아내지 못하고 지나간 화려한 과거로 현실을 부정하며 현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그들은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도 예수님의 시대에 같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보여주시고 아버지의 뜻을 계시하지만 그들은 자기 교만에 갇혀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아들을 볼 수없는 어두움에 살았습니다. 해서 예수님의 삶이 그들과 대조적인 것을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필립피서 2,6-9


 


예수님이 높이 달리신 십자가의 희생제사는 사람의 교만을 상징하는 불 뱀을 예수 그리스도의 낮추심으로 구원의 표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사랑이었으며, 희생까지도 기쁨으로 만들어 낸 큰 사랑이었습니다. 희생은 사랑 없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희생 안에 사랑이 있으면 내가 힘들고 어렵고 지친다하더라도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낡은 내의를 고집하는 것이 자식을 위한 희생이었지만 그분에게는 기쁨의 시작이 되었듯 말입니다.


 


우리의 교만이 이웃을 해칩니다. 해서 어떤 때는 우리의 알량한 지식이 이웃에게 고스란히 상처로 남습니다. 우리의 부유가 하느님의 선물까지도 보잘것없는 양식으로 전락시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라 합니다. 우리의 교만을


보고 그분의 겸손을 배우라 하십니다. 우리의 죽음 앞에서 그분의 구원을 보라 하십니다. 구원은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큰


사랑으로 높이 달리셨던 그분의 십자가에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에페소 2, 4-5




오늘 복음과 독서들은 사랑 희생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사랑 십자가의 신비를 바라보라 합니다.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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