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통의 바다입니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입니다.

 

 

"인생은 고해(고통의 바다)이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인생은 고통의 바다 같습니다. 노랫말처럼 인생은 나그네길이고, 큰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역풍에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지면 좋겠지만 인생은 내가 원하는 것처럼 쉽지 않아 한숨과 탄식으로 힘들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약한 믿음’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초대교회와 사도들에게, 예수님은 용기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파도에 시달리는 배 안에 있는 제자들을 향해 가신 시간이 성서 원본을 보면 밤 사경이라 하는데 이는 새벽 세시부터 여섯시 사이를 말합니다. 캄캄한 한밤중은 아니지만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때로, 우리말 성경은 이 시간을 ‘새벽'이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새벽'은 빛이 없어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시기인 동시에 머지않아 동이 트리라는 것을 아는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동틀 녘’을, 하느님이 어려움에 빠져 있는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시는 때라고 믿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피신처와 힘이 되시어 어려울 때마다 늘 도우셨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하느님께서 동틀 녘에 구해 주시네.”(시편 46,2­6) 오늘 복음에서 ‘새벽녘’은 예수님의 제자들, 나아가 마태오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물위를 걸으신 기적의 이야기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후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자와 어린이 빼고 남자만도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예수님과 제자들과 그 자리에 모여든 모든 사람을 흥분 시키고도 남았을 겁니다. 특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기적을 보고 그분이 특별한 분이심을 알게 되어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들뜬 군중에게 무슨 일을 벌이지 않을까 염려되기 도합니다. 그래서일까 예수님은 서둘러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22)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24)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먼저 가 있게 하신 곳은 겐네사렛 호수 ‘건너편’(22)으로 이방인의 땅입니다. 늦은 시간에 예수님 없이 가게 된 곳이 하필 낯선 곳입니다.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24절) 이방인의 고장에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이루는 일이 예수님 없이는 순탄치 않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25) 물 위를 걷는 일은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혼자 하늘을 펼치시고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9,8) 죽음을 상징하는 물 위를 걷는 것은 죽음에 대한 승리를 가리키며,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를 보여주는 사건이 됩니다. '새벽'에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바로 어제 저녁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하도고, 당신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십니다.

 

마태오복음서에서 용기는 종종 믿음과 연결됩니다. 참된 믿음으로 다가오는 이들에게 그분은 늘 “용기를 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한테도 먼저 다가와 용기를 불어넣으시는 분입니다. 약한 믿음의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혼비백산 하지만, 용기를 내라고 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27) 여기서 '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여쭈었을 때 들려진 이름과 같습니다. "나는 곧 나다." (탈출기 3,14)

 

베드로는 물위를 걷는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자 가장 먼저 용기를 냅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28)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29)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볼 땐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30) 거센 바람을 본 베드로는 곧바로 물에 빠져듭니다. 하느님께 시선을 집중하는 것만이 불안한 현실과 위기에서 우리를 구하는 길입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30) 베드로의 기도는 신심 깊은 유다인들의 기도와 닮았습니다.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목까지 물이 들어찼습니다.”(시편 69,2)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십니다(31).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31) 그분을 믿기는 하지만 믿음의 정도가 약합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계획에 대한 전적인 신뢰, 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즉시 그칩니다.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32) 예수님이 배 안에 계실 때 주변의 소용돌이는 잠잠해지고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그분과 함께 있으면 삶의 한밤중, 폭풍우의 한복판에 설지라도, 불안정한 상황 한가운데 있더라도 평화를 체험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베드로를 내세웁니다. 예수님의 손으로 구출된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 배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33)라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예수님의 기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교회의 사명은 윤리나 영적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데 있지 않고, 먼저 그분 현존 안에 머물고,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더라도 언제나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되풀이해서 고백하며 그것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고해라고 한 부처의 말씀처럼, 소란스럽고 복잡다단한 삶에서 중심을 잡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생이라는 항해 안에서 가끔씩 몰아치는 폭풍우는 더더욱 속수무책입니다. 두렵고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해(고통의 바다)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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