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들어라!

 

 

 

 

 

말 좀 들어라!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 자주 듣는 말씀이 '너는 왜 말을 못 알아듣니?' 혹은 '왜 말을 안 듣니?'였습니다. 이런 말을 많이들은 이유는 착한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지요. 말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와 저의 세대차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려는 고집 때문에 그분의 말을 들으면서도 속으론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고, 처음부터 하지 않겠다는 비뚤어진 마음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마태오 복음 13장의 시작으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비유란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어떤 사물을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을 빌려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도

자신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셨다. 특히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심원한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셨다." <가톨릭대사전>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 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3,10–14)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아듣는 '너희'가 우리였으면 합니다. 그러나 허락되지 않은 '저 사람'들은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무디어져서이고, 귀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만 들으며, 눈은 감겨져 사실을 보지 못하고 허상만 보는 이들이 '저 사람'들이라 하십니다. (14-15참조)

 

이스라엘의 농사법을 보면 10월 말경이나 11월 초순에 비가 내 리기 시작하는데, 그 때 농부들은 보리와 밀을 심습니다. 그리고 5-6월

추수 다음부터 10월까지 밭을 묵혀두기 때문에 사람들이 밭으로 가로 질러 다녀 지름길이 나는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땅은 대부분 겉은 흙이 덮였지만 속은 바위가 많은 척박한 땅입니다.  해서 4월부터 10월까지의 건조기에는 가시 돋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랍니다.  또한 예수님 시대에는 우리처럼 먼저 밭갈이를 하고 잡초를 없앤 다음 씨를 뿌리지 않고 반대로 먼저 씨를 뿌린 다음에 밭갈이를 하기에 씨가 잡초 속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농사법으로 보니 오늘 복음 말씀이 더 잘 보입니다.

예수님의 설명대로 비유의 소재에서 말하는 '씨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고, '씨'는 '복음 선포'입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은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새'는 말씀을 잡아먹는 '사탄'을 말합니다. 사실 이런 우의적 해설은 초대교회의 복음 선포의 체험과 신앙생활의 실태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설명으로 읽어보면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 씨” (4)는 말씀은 듣지만, 사탄이 먹어치워 싹도 키우지 못하는 경우 입니다. 그리고 ‘돌밭’ 에 떨어진 씨는 싹은 티우지만 뿌리(신앙) 를 못 내려 바로 죽습니다.

(5-6)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는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버렸습니다.” (7)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의 열매가 “백배, 예순 배,

서른 배”(8)가 되었다는 것은 이전에 겪은 실패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수확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은 농부의 의기를 꺾을 만큼 맥 빠지는 일이긴 하지만,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리라는 확신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예수님의 활약상과 관련하여 뜻을 밝혀보면 이렇게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활동 초기에 그분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과 전혀 다른 예언자의 모습과 스승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또한 과히 파격적인 설교와 행동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기에 그분의 인기는 절정에 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년을 들여 다보면, 인기가 점점 떨어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는 고작 열두 제자와 몇몇 부인들만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인기가 하락에 하락을 거듭할 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 같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누군가가 예수님께 다 집어치우고 친척이 있는 고향으로 되돌아가라고 종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파종하는 농부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저 밭에 씨 뿌리는 농부를 보시오. 지름길도 나 있고 토심은 얕으며 잡초가 무성한 밭에다 씨를 뿌려봐야 결실이 없을 것이니 파종을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라 속단할지 모르지만 저 농부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유실되는 씨도 많겠지만,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내는 씨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다가오는 풍작을 꿈꾸면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나 역시 오늘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에 곧 하느님께 엄청난 기대와 희망이 있습니다. 해서 나는 아버지의 일을 중단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 성당의 미래가 우울하다고 합니다. 시카고 한 인 천주교회의 자부심이며, 50년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성당에 안 나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성당을 옮기는 이들도 생겨나고, 젊은이들 보다 노인들이 많은 공동체라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고도 합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보면 절망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밭은 샛길이나 돌밭, 가시덤불보다 좋은 땅이 훨씬 넓은 법입니다. 어떤 씨들은 길 위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지겠지만, 더 많은 씨들이 좋은 땅에 떨어지기에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처럼 하느님께 엄청난 기대와 희망이 우리겐 있습니다. 해서 우리도 아버지가 맡기신 일을 중단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릴 적 어머니가 제게 자주 하신 말씀이 오늘 새삼스레 들리는 것은 제게 추억이 주는 반성의 시간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비추어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사는지 반성하는 회개의 시간입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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