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 대축일 김두진바오로 신부님 강론

4 4일 예수 부활 대축일 복음 묵상

부활 성야의 모든 예식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거룩한 밤을 기념하여 교회 전체에서
가장 성대하게 거행한다
.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듯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의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날을 기념한다. 따라서
교회는 장엄한 전례를 통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참된 승리와 해방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한다
.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돌아가신 예수님께 마지막 예를 표하기 위해
그분을 찾아 나섰지만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으려 했기에 그분을 찾을 수 없었다
. 오늘
복음 서두에 그 말씀의 뜻을 전한다
. ‘아직도 어두울 때 무덤에 가서 보니라는 말씀은 아직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는 어두움 속에서 헤매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부활은 신비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면 우리는 부활을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게 된다
. 사실 오늘 이 요한복음은
매우 극적으로 표현되어진다
.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입구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이 잘 나오시게 돌을 치워 놓은 것이 아니라 부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돌을 치웠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생각일 것이다
. 부활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리 앞에 굳건히 서 있는 돌을 치워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먼저 나를 막고 있는 커다란 불신의 돌멩이부터 치워야 한다.

 

돌을 치우고 무덤에 들어간 젊었던 요한은 무덤 안에 놓인 아마포를 보았으며, 베드로는 아마포와 수건들을 보았다. 이렇게 보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요한복음 사가는 부활은 체험 되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신비임을 강조한다
. 그래서 오늘 제 1독서에서도 우리는 바로 이 일의 증인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증인이라는
것은 눈으로 본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 즉 체득하고 체험한 사람들이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제2독서에서 듣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은 우리 가슴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비적으로 그분과 함께 죽음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고 말한다.
죽은 사람은 욕심도 없고 집착도 없는데 아직까지 집착이나 욕심에 가려져 있으면 우리는 아직 신비적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라 사도
바오로가 지적하고 있다
.

 

오늘 복음 말씀에서 막달레나 마리아의 애정이 있고, 요한의 직관이 있고, 베드로의 굼뜬 동작이 있었다. 이는 주님의 현존의 표징을 찾는 상이한 영성들과 태도들을 암시한다. 어떤
이들은 신속하고
, 어떤 이들은 굼뜬 것처럼 교회에는 영적 은사가 다채롭고 제각기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다양성 안의 협력이라는 본보기가 이 일화에서 엿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부활을 체득하려면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애정이 있는 사람들은 베드로의 굼뜬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부활 하신 그분을 체험하도록 도와야 한다
.
요한의 직관이 있는 사람들은 애정만 가지고 있는 마리아에게 그분의 부활을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베드로의 굼뜬 깨우침은 직관에만 의존하는 이들에게 그분의 부활을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

 

우리가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이래서 은총스럽다. 우리가 공동체에 함께 한다는 것은 이래서 감격스럽다. 서로에게 등불이
되고 서로의 어둠을 밝혀주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의 증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