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3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4 18일 부활 제 3 주일 복음 묵상

오늘 우리가 들은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이스라엘이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리고
그분이

누구였는지 밝히고 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인 줄 알고 석방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루가는 여러 번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함으

이스라엘
백성이 그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다
고 베드로는 증언한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하셨다고
함으로 그분은 생명의 영도자가 되셨으

며 죽은 자들의 부활에 있어 첫째분이 되시었으니 다른 이들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분이시라
베드

로는 담대하게 선포한다.

 

우리가 들은 2 독서에서도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또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어 빛 속에 있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계명, 즉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게 하는 책망이 들려진다. 하느님의
사랑이란 표현은 요한
1서에 6번이나 나온다. 이는 주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뜻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을 뜻하는 경우도 있다
.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느님이 먼저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결실
(완전)을 맺게 된다.
본디 사랑은 받고 주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불과분의 관계에 있다.
요한복음서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범하는 오류의 행위가 여기에 있다
. 내가 너를 사랑했으니,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인데
, 사랑을 하고 싶어서 하면서도 인간적인 약점 때문에 그 사랑을 돌려받으려고
하는데 있다
. 내가 한 것만큼 너도 내게 해야 한다는 계산적인 사랑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지 않으셨다. 해서 우리는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내가 한 만큼 네가 하지
않았으니 내 잘못이 아니라 네 잘못이라 하면서 상처를 주고 받는다
.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발현이 유령으로
오해 할까 싶어 부활하신 예수의 육체성을 강조했다
. 하지만 부활하신 분의 육체는 이승의 속박을 완전히
벗어나신 분으로 나타나신다
. 이제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레아에서 시작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으니 이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 끝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구원사건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 사도들은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될 것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의 회개를 선포하게 된다
.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 될 것이다
.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 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우리들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게 주시는 것은 평화이다
.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지만, 찾지 않으면 절대 찾을 수 없는 하느님의
숨은 진리이기에 자유롭기 위해 자기로부터 속지 말고 참 자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 부활! 믿기 힘든 사실이다. 주님의 평화!
찾기 어려운 진리이다. 그리고 참 자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