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리오.
젊고 건장한 멕시코 한 벽촌의 청년입니다.
갓 시집 온 마음씨도 곱고 예쁜 색시와 단칸방 신접살림을 차린 이 청년은 언제나 처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직장인 인근 농장에 가서 옥수수도 따고 풀을 베어 소먹이로 여물도 만들며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젊은이였습니다.
언젠가는 보다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엇기 때문에 묵묵히 그러나 성실하게 일햇습니다.
그렇게 주말의 휴식도 없이 정성을 다 해도 새 색씨의 손에 쥐어주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지쳐서 돌아오는 남편의 밥상에 올려 놓을 수 있는 것은 콩죽 한그릇과 수수빵 한개가 고작이였습니다. 신랑에게 늘 안쓰럽고 미안했던 부인은 더러 시장어귀의 푸줏간에 들려 두리번거려 보지만 턱도없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 발걸음을 돌리곤 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읽어보는 둘은 식사때면 얼굴을 마주보며 손을 맞잡고 하느님께 마련해 주신 양식에 감사의 기도는 잊지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농장의 문에는 큰 자물통이 잠긴채 있었습니다.
쌓이는 빚과 타산을 맞출 수 없었던 농장주는 헐값에 땅을 팔아치우고 마카리오에게는 아무 예고조차 없이 떠나버렸습니다.
날벼락에 망연자실했지만 이젠 그나마 상에 옥수수 빵도 올려놓을 수 없게된 부인은 남편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였지 무슨 대책도 없었습니다.
이 깡촌에는 더 이상 마카리오의 손이 필요한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들에겐 이렇게 어려움을 만나면 어두움의 세력은 다가와 유혹의 손길을 뻗칩니다. 그것이 그들의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아마 (설상가상) 이라고도 하고 Murphy’s Law 라고도 하는 모양입니다. 동네의 한 건달이 용케도 알고 찾아와 얼마간의 자금만 마련하면 텍사스에 넘어가 일자리까지 마련해 주마고 접근합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은 사람을 물불을 가릴만큼 여유를 주지 못는 모양입니다.
텍사스로 몰래 넘는 것은 불법인줄 잘 알았지만 그렇다고 앉아서 굶어 죽기를 기다릴 처지도 아닌 현실을 실감한 청년은 온 마을을 돌며 사정을 했습니다.
그의 성실성을 아는 마을사람들은 버는대로 곧 갚겠다는 그를 신용하고 돈을 뫃아 주었습니다.
돈을 건네받은 건달은 그를 한 화물열차로 안내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면 안내인이 열어주고 무사히 일자리로 데려다 줄 것이라며 그를 밀어넣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가 버렸습니다. 달리던 열차는 멈추었고 아무리 기다려도 문을 열어주러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환기통도 없는 화물칸안에서 소리지르고 발로차고 울부짖던 마카리오는 질식사했고 싸늘하게 시체가된 그가 발견된 것은 한참이나 지나서였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오면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 주겠다는 부푼 희망으로 남편의 금의환향을 기다리는 어여쁜 부인을 남겨놓고 마카리오는 객지의 열차칸에서 젊은 생을 그렇게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 영화의 줄거리였습니다.
여기서 한 젊은 청년의 삶과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일이 있어보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성실히 살면 뭐하냐? 결국 기다리는 건 저런 값싼 죽음 아니냐? 그러니 수단 방법 가릴게 아니라 잘되는 것이 우선이다.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는데.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느님의 정의를 믿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구실로 정도를 벗어나고 싶다는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의 (주 기도문)을 외우며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악으로부터 구해주십사) 기도하는 마카리오를 주님은 위로하시고 영원한 평안으로 안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른 하나는 마카리오를 저렇게 다만 (먹을 양식)을 얻으러 몸부림치다가 죽음으로 몰고가게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가난했던 그의 환경의 탓입니까? 팔자소관입니까?
배불리 실컷 먹고 그래도 남겨서 음시쓰레기를 매일같이 내다 버리면서도 아무 거리낌이 없이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누가 마카리오를 죽게 했나요?
배부른 이들이 무심코 내다 버리는 매일의 음식쓰레기만 절약하여도 이 세상에 굶는 이를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혼자 의로운 사람인체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멕시코까지 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갈 것도 없이 우리가 사는 주변에도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오는 9월 27일은 (빈첸시오 드 폴) 성인님의 기념일입니다.
그 분은 굶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물론 배고프다는 사람들에게 밥 한그릇 주는 일만이 자선은 아닙니다.
외로운 이웃에게 위로 한마디, 따스한 미소나 기도 이런 일도 모두 자선일 것입니다.
아마도 마카리오는 이웃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수님이셨을지도 모름니다.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이 담긴 빵 하나는 무엇보다 긴요한 기도가 될 것입입니다. 다시는 마카리오를 볼 수 없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으며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