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한 어른이셨던 김수환추기경님 추도사

                         이 규정(소설가, 전 천주교 부산교구 평협회장)

공경하올 추기경님,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사랑과 공경의 대상이시었던 추기경님, 한때 위독하셨지만 고비를 넘기셨다는 소식에 적이 안심하고 있었는데 선종하시다니 슬픈 마음 가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제 저녁 소공동체 회합에 참석했다가 추기경님의 비보를 접했습니다. 그래서 회합의 시작도 추기경님의 명복을 비는 묵념과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여든 여덟. 장수하셨지만 추기경님의 긴 인중과 저희들의 소망에는 영 못 미치신 수(壽). 저 세상에서도 그렇게 하실 말씀과 일이 많으셨던가요?    

회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수도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어느 젊은이와 추기경님께서 2000년 4월 24일에 함께 찍으신 사진을 꺼내 한참이나 추기경님을 응시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추기경님께서는 아주 정정하셨습니다. 수도원 건물 벽을 배경으로 추기경님께서는 아래 위 까만 양복에 하얀 로만컬러의 복장을 하셨고, 젊은이는 길고 하얀 수도복을  입고 찍은 사진입니다.

1999년 4월 어느 날, 천주교 한국평협 임원들의 모임이 있었던 대구에서였습니다. 그날 추기경님께서는 강론을 하셨는데, 평신도의 역할과 사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국민의 의식이 낮고 책임감이 없는데, 가톨릭 평신도 지도층만이라도 항상 깨어 있는 의식과 매사에 책임을 중시하라고 하셨습니다.

세계화가 휘몰아치고 있지만 우리의 정신적 가치관부터 정립해야 한다면서, 현 상태의 의식 수준으로는 진정한 세계화보다는 물질 숭배와 선진국 풍습의 노예화만 가속화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교육에서는 정직 근면 성실의 인간교육이 급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현직 교수였던 저는 이런 말씀을 모두 메모했는데, 추기경님의 예언은 날이 갈수록 진행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공경하올 추기경님,

추기경님께서는 엄혹했던 지난 시절, 자주 저희들의 눈을 띄우고 가슴을 후련케 하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인권유린 위에 이룩된 경제 발전의 문제를, 생살여탈권을 가진 공포정치를, 정부와 대결할지언정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와 농민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음을, 광주 5․18의 비극과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서는 교회가 왜 사회참여를 해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의 그 용기 있는 발언은 국민의 가슴에 희망을 심으셨고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셨습니다. 아, 생각하면 추기경님이 더욱 우러러 보입니다.

이 시대 진정한 어른으로 민주화 운동의 지주, 국민의 양심이셨던 추기경님, 이 빈 자리를 누가 채워야 합니까. 추기경님의 마지막 메시지인 “항상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말씀 잘 기억하겠습니다. 하느님 곁에서 부디 안식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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