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날픈 나비의 날개조차도)
마을과 마을사이를 날마다 달려서 물건을 날라다 전해주고
그 수고비를 받아서 가족과 자신을 부양해야 하는 트럭 운전사.
그날도 피곤한 몸으로 빗길의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었는데 사장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도 배달이 끝나면 다음 행선지로 가라는 업무지시였겠지.
중요한 지시를 놓치지않으려고 셀폰에 귀를 바짝 대고 있었는데 빗속에서
갑자기 길이 커브로 다가왔다.
긴장되어 급히 핸들을 돌렸지만 큰 트럭은 그렇게 쉽게 꺽여주지 않았다.
중앙선을 뛰어 넘어 마주 오던 차를 받았다.
그 차안에는 가족의 결혼식에 가던 한 가족이 타고 있었는데 모두가 참변을 당했다.
(뉴스에서 발췌했음)
정말 눈 깜짝할 순간에 전에 서로 만난일도 없고 아는 사이도 아니였던 여러 생명이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만나고 있었다.
* *
뉴스를 통하여 접한 사고소식은 읽는 나의 가슴을 조이고 생각에 잠기도록 이끌었다.
이런 끔찍스런 비극은 정말 순간적으로 우연히 일어난 피할수 없는 사고였을까?
그렇지 않아 보였다.
사고의 당사자들은 물론 그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슬픔과 충격을 배달해준 사고는
어쩌면 아주 조그만 주의로도 예방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트럭운전사의 사장은 물론 시간을 다투어야하는 책임때문에 지금 운전중인
그 기사에게 지시를 해야만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지금의 일을 마치기까지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면
다음 정류장에서 연락하도록 메시지만 전하였으면 그 사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매사에 ” WHAT IF..? “그렇게만 가정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구의 저편에서 한번 펄럭이는 아주 가날픈 한 나비의 날개짓이 일으킨 보잘것없는 가벼운 바람이 가속되고 보탬을 얻으면 지구 반대편에 이르렀을 때엔 엄청난 폭풍으로 되어 가공할 결과를 만들수도 있다는 가설이 우리가 잘 알고있는,
소위 BUTTERFLY EFFECT (나비의 효과)이다.
나 한사람의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그리고 행동 하나가 바로 곁의 이웃은 물론
알지도 못하는 저 먼곳의 이웃에게도 상처가되고 고통을 줄지도 모른다는 걸
말하고 있는 나 자신도 매일의 삶속에서 얼마나 자주 많은 이웃에게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또 반복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공중에 나는 작은 새 조차도)
볼일을 보고 돌아와 차를 세우려는데 앞의 풀밭에 아주 예쁘게 생긴 작은 새 두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연신 먹이를 찾는 그 몸짓이 예쁘기도 해서 차문을 쾅 닫는 소리에 놀라 날아갈까 싶어 잠시 앉아 노는 모습을 내다보기로 하였다.
한마리가 먹이를 찾았는지 입에 물고는 바로 먹지를않고 다른 새에게 자랑이라도 하려는듯 먹이를 문 주둥이를 그앞에서 흔들어댔다.
약이오른 새가 먹이를 뺏으려하자 둘 사이에는 먹이를 놓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조그만 새들의 싸움이 가히 장난이 아니었다.
기어이 한쪽이 크게 상하고서야 끝날 태세이다.
내려서 차문을 큰소리로 닫자 싸우던 둘은 떨어져 달아났다.
* *
조그만 새들의 싸움은 방으로 오르는 별볼일 없는 나에게 또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저 보잘것 없어보이는 미물, 조그만 새들의 싸움을 비웃고있는 나는 과연 그것들보다 대단히 더 훌륭하다고 말하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매일 상위에 올려 푸짐히 먹고 또 자주 남겨서 쓰레기를 만들어 버리는 나보다 물질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는 이웃에게 내가 보태준 일도 없으면서 공연히 시기하고 비판하고 흉거리로 삼지는 않을까?
좋은 차에서 좋은 옷으로 맵씨를 내고 내리는 이웃을 만나면 조금전에도 멀쩡했던 나의 배가 갑자기 아파하지는 않았을까?
뭐 아주 조금, 쥐꼬리만큼 아는 것이 있으면 대단한 지식인, 지성인이라도 되는듯 목이 뻣뻣해져서 어색한 걸은걸이로 비틀대지는 않았을까?
먹이를 가지고 싸움판을 벌이던 그 새들보다 내가 뭐 썩 잘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자신을 그렇게 자기비하하고 추접스럽게 구는 일은 나를 내신 창조주, 하느님을 욕되게 하고 그분의 영광을 가리는 못된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잉태되기도 훨씬 이전에 나를 알았고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공중에 나는 새들보다는 비교도 할 수없는 귀한 사람으로
지으셨다 하신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어째서 나는 그 새들앞에서 조차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는가?
어째서 나를 그 새들과 비교하고 있는가?
다만 내가 고민하고 염려하여야만 하는 일이란,
하느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내 자신을 사랑하며 또 다른 귀한 피조물인 나의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앞에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런 주님께 영과 드리는 피조물로 도구로써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교회를 통하여 배웠고 어제도 또 오늘도 그 실행을 다짐하며 있지만 이렇게 쉽게 말하는 일처럼 실행이 되지않는다는 것이 주어진 과제로 언제나 내곁에 남아있다.
(봄과 같은 사람이란)
계절은 5 월도 중순이 넘어 다음달을 바라고있는데 어째서 나더러 두터운 옷을 입고있으라고 강요하고 있는가?
변더스런 날씨가 나를 한달간이나 호되게 아픔을 주어 시달리게 하고도 아직도 모자라 이렇게 춥고 을씨년스러운가?
…….?
이런 나의 푸념을 들었을까 오늘부터 포근하고 따뜻한 봄날이 온다고 한다.
이제 그런 봄날 같은 날씨뿐이 아닌 봄날같은 이웃도 만나게 되겠지?
( 봄과 같은 사람이란 )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 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게 하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 어느 시인의 시 중에서)
5 월은 싱그러운 계절, 성모의 성월이니 제일 좋은 시절이다.
내일 5 월 20 일은
성모의 밤 행사가 있는 날, 그이를 찬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