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거울앞에 좀 떨어저 섰을때는 그런줄 몰랐습니다.
얼굴에 큰 흠은 없이 그래도 그럭 저럭은 되는줄 알았습니다.
어느날에 가까이 다가 가 들여다 보고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흥미가 생겨나 현미경을 통해 제 얼굴을 들여다 본 그 날엔 까무러칠뻔 했습니다.
그렇게 험악한 얼굴을 갖고 다녔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산불에 그르으고 화산 맞은 들판은 차라리 아름답다 해야겠지요.
이렇듯이 어떤 도움을 받지않고는 자신의 몰골을 제대로 알며 살기가 어려운가 합니다.
여행을 하다가 날이 저물어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불빛이 창으로 비쳐 나오고 굴뚝에서 저녁짓는 연기라도 모락모락 솟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그곳에 가보고 싶고 그 안에만 들어가면 온 세상의 평화는 그곳에 다 담겨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들여다 본다면 아마도 흔히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를게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근심, 다툼, 이런 것들이 그들의 삶속에 함께 있겠지요.
제가 전에 개인의 사정으로 아주 오랜 세월 동네 성당에만 가면서 부끄럽고 흉투성이 제 모습이 다 들켜버리까 싶은 두려움때문에 우리 성당엘 오지도 못하고 겉으로 맴 돌며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교우들이 너무 그립고 보고싶은 날엔 저녁 무렵 슬그머니 성당곁에 차를 세우고 몸서리 칠 만큼 들어가보고 싶어만 하다가 더 이상은 견딜 수없게 되어 슬금글금 끼어들어 지금처럼 잘 다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그러다 만난 우리 교우님들을 만났을때 여기가 바로 천국인가 할 만큼 모두 평화스럽고 화기가 넘쳐나 보였습니다.
거울앞에 조금씩 가까이 갔을때의 경험처럼 이제 조금씩 다가가니 전보다는 잘 보이게되고 귀동냥을 하게 됩니다.
일반 사회와는 물론 좀이라도 달라야 하겠지만 한가지 틀림없는 것은 신앙공동체라 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인 곳입니다.
겉보습이 각각 다르듯 다 다른 생각과 다른 마음가짐을 가진채 모인 곳입니다.
만약 모두 똑 같다면 어떤 의미에선 인형들의 모임이 될지도 모르지요.
다만 예수님의 뜻을 쫓아 신앙안에서 한 마음을 이루자는 목표가 있지만 그 길로 가는 여정에서 말처럼 내마음처럼 쉽게만 되는 일이 아닌듯 여겨집니다.
다만 확실히 해햐 할 일이 있다면 (내 뜻), (내 정의)가 아닌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정의)에 내 마음을 모아야 하리라는 것입니다.
나의 잣대에 맞추어 재단을 하면 양복이 어색하게 맞을 수있지만 전문 재단사의 잣대에 나를 맞기면 편안한 옷을 입게될 것입니다.
제가 알던 한 장로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자기가 교회를 몇번 옮겼을 것 같은지 알아 맞춰 보라고 하여 세 군데? 하니 열 여덟번을 옮겨다녔는데 곧 또 옮겨야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느 곳은 목사때문에 또 장로가 아니꼬와서, 목사사모가 눈에 거슬려서 그렇게 계속 교회를 바꾸었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지요.
만약 당신이 뉴욕에서 출발해서 엘 에이까지 가는동안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교회를 들려서 마음에 쏙 드는 교회를 찾아내면 원하는 모든 것을 내 몸을 팔아서라도 들어주겠다 했는데 지금은 그 사람이 다른 주로 이사를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남의 얘기 말고 저의 마음을 고백하지요.
아마 저처럼 주는 것없이 미운 사람, 마음에 썩 안드는 사람, 나에게 한번도 잘못한 일도 없는데 싫은 사람을 속에 많이 담고 지내는 사람도 없지 싶습니다.
이유도 없이 괜히 싫은 거예요.
이쯤 되면 (구제불능)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날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사돈 남말 하듯 하지말고 남이 너 보기 싫은 건 어쩔건고?”
” 제눈에 들보는 어떻게하고 남의 눈에 티눈 타령하다니? 정말 못봐주겠네?”
남을 향해 손가락질하면 네 손가락은 자신을 향하게 된다는 걸 배우고는 기막힌 창조주의 솜씨에 또 한번 놀랬더랬죠.
내가 하는 일은 다 옳게만 보이고 남은 그르다 생각하면 (독선)이되고 맙니다.
(독선)은 진리이신 하느님의 몫이고 우리는 다만 주님안에서 (공동선)을 추구할 의무가 주어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불행히도, 또 다행히도 나는 심판을 받을 자이지 심판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내보면 아무리 하느님의 잣대로 맞추어보아도 정말 잘못 나가는듯이 보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침 튀겨 그것을 나무라면 내 얼굴에도 침이 튀어 올텐데 그땐 분란말고 남는게 뭐 있을라구요?
(분란)을 보고 슬퍼하시는 분은 한 분이시고 (분란)을 보고 손벽을 치며 기뻐할 자는 오직 사탄뿐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하는 사람들인지를 알면 자연히 우리가 해야 할이 무엇인지 분명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알곡속에 뉘도 섞여 일을테고 가라지도 더러 있을테죠.
속상해도 농부가와서 골라 처리할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요.(마태13.30)
그냥 기다리지 말고 난 내 할일을 충실히 하면서 기다리면 신랑이 왔을때 등불에 기름 떨어져 당황하지 않을테지요.(루까12.35)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도 죄를 묻지 않겠다고 돌려보내셨습니다.(요한 8장)
제 혼자 생각에 좋와보이는 의견이 있습니다.
모두가 하라고 맡겨주신 일을 충실히 하며 자신을 (정화)시키면 살고 있는 물이 맑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물이 맑고 깨끗해지면 설사 그곳에서 흙탕을 만들던 미꾸가지가 있었다면 저절로 자멸하하고 떠날 것입니다.
미꾸라지는 맑은 물을 견딜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