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유명하십니까?

 

 

 

 

 

 

여러분은 유명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제인 저도 또 수도자들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삶이 무의미 할까요? 사랑을 하면 상대방에게 관심을 쏟게 됩니다. 해서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미움 그 자체도 관심이기에 사랑의 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부자와 가난한 나자로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라자로는 그리스어로 「도움 받을 길이 없다」는 뜻이랍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이름으로 쓰면 엘사자르 또는 엘리제르가 되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하느님이 도우신다」(El-azar)는 뜻이 된답니다. 복음에 나오는 나자로라는 이름은 살아생전 아무에게도 도움 받을 길이 없는 삶을 살다가 죽어서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는 가장 적합한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매우 단순합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부자와 아주 불행한 처지에 놓은 거지 라자로가 있었는데 죽음 후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고 부자는 땅에 묻히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먼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 즉, 부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축복 때문이고 가난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벌 때문이라고 생각하던 관념에 대한 반박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없겠지만,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시어 부자가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저주를 퍼부어 가난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신앙입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의미는 물질적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니 거기에 만족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부자입니다. 즉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부자란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루카 복음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여기서 부자가 입은 것은 자주색 겉옷과 고급삼베로 짠 고운 아마포 속옷인데 자주색 겉옷은 예로부터 그리고 로마 시대에 황제와 일가 귀족들의 특권이었고 (판관기 8, 26과 창세기 49, 10) 고급삼베는 이집트 수입 직물로 지은 사제의 옷감( 출애굽 25, 4와 28, 5)이니까 옷차림만 봐도 주인의 신분은 대단한 사람으로 짐작 됩니다. 그런 사람이 날마나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고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부자는 이름이 없는 '어떤 부자'이고 온몸에 종기가 난 거지는 '라자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름 없는 무명(無名)의 부자와 유명(有名)한 거지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사실 영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는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부자들입니다. 생명, 시간, 건강, 능력, 이웃, 아름다운 자연,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 나를 사랑해주는 많은 친구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저녁노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입니다. 하루 24시간을 자신이 먹고 마시는 일에, 친구를 만나는 일에, 자기 취미생활에, 일을 하는 데에, 여기저기 구경하는 일로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데에, 이웃에게 봉사하는 일에,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일에는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름 없는 부자가 됩니다. 즉, 부자는 많고 적음을 떠나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요, 가진 모든 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즉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또는 하느님에게는 인색한 삶을 사는 사람이 무명의 부자입니다.

 

가난한 나자로는 누구 입니까? 가난한 나자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가난한 나자로인 예수님은 부자인 인간의 문 앞에 버려져 있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자신만을 위해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가난한 모습으로 와 계십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날마다 호화롭게 살고 있는 우리의 이기적인 눈을 가난한 이에게 돌리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장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져 있으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마태25, 35-36) 해서 사도 바오로는 이런 예수님의 가난한 삶에 대해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고린 후 8,9) 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단순히 얼마나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부자요, 반대로 나눔의 삶을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부자는 항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늘 부자로 살 것이고, 가난한 이는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비록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늘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생활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요, 정말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늘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인색한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부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자는 어떤 부자로 불리고 가난했던 이는 라자로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곧 가진 것을 자신만을 위해서만 쓰는 이는 결국 이름도 잊혀질 것이지만, 가진 것을 나누는 가난한 이는 유명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명(無名)입니까 아니면 유명(有名)하십니까?

 

                                                                                                                                                                                                     김 두진(바오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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