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 아파트에서 사는 일이란 )
조금 전에 싸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소방차와 엠부란스 한 대가 함께 왔다. 이제는 그 소리에도 어느만큼 익숙해지고
이력이 생겨서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처음 이사 들어와서 한동안은 그 싸이렌 소리만 들리면 한밤중에 누워 있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허겁지겁 놀라서 창가로 달려가서 내다보고 여러명의 소방관들이
들것이라도 들고 건물안으로 들어가는 날이면 복도에 나가서 두리번 거리고 뭔일인가 눈을 휘둥거리고 가슴은 새가슴이 되어 두근두근 하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들이 사람 놀라게 해 주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니 말이다.
까스불에 음식을 올려놓고 테레비를 켜고 거기에 팔려 있거나 꾸벅꾸벅 졸다가
연기가 온 복도를 꽉 메워서 알람이 울려대고 심지어는 올려 놓은 채로 아예 외출을 해서 온 건물이 곰 잡게 연기로 차서 젖은 수건으로 코를 막고 더듬어서 빠져 나간 일도 있었다. 그럴 때는 엘레베터를 타지 말라해서 제일 꼭대기 구석방인 나는 마치 전쟁터를 헤쳐나가듯 연기속을 더듬어 나가기도 하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연기속만 해메이면 됐지만 그것이 불길이면 어째야 할지.
하기야 나도 음식을 까맣게 태워 먹은 적이 몇 번은 있었으니 어찌 남 탓만 하랴.
외출할 때 문을 잠그고 나가다가 다시 열고 들어와 까스불을 들여다 보는 습관은 그래서 생겼으니 좋은 버릇 하나 배운 셈이다.
외출하려 현관을 거치느라면 한무리의 할머니들은 언제나 그곳을 점령하고 앉아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일일히 올려다 보며 저네들끼리 뭔지 수근 거리기도 하고
” 어딜 다녀오는 길이냐? ” “웟이 그리 늘 바쁘냐 ? “
그런 질문도 시들하면 “Hi, Moses. ” ” Hi, Moses. ” 그저 그러면서 참견도 한다.
( 저이들은 어떻게 아침부터 해질녁 까지 허구헌 날 거기에 앉아서 남 참견이나 하면서 세월을 그냥 까먹으며 지내는 걸까? )
무엇이라도 의미 있는 일거리라도 만들어 하지 그래요?
그런 생각 들다가도,
” Its none of your business. Don’t you worry about us. You just take care of yourself, All right ? “
그런 핀잔이나 얻어 들을까 하여 꿀꺽 삼켰었지.
그들 생각이 그랬다면 그 말이 맞는 말이다.
내 앞가림이나 제대로 할 일이지 내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는 주제에 무슨 일로 남 걱정까지 챙기겠는가.
오늘 앰부란스에 실려 간 그 노인은 몇호실 아파트일까 ?
실려 갔다가 잘 회복되어 다시 살던 방으로 되돌아 오는 반가운 일도 있지만
한번 가서 다시 못보게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되면 관리실에서 벽보에다 누가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다거나
또는 그만 아주 깨어나지 못해서 지금 어느 장의사에 누어 있으니 작별인사 하려면 찾아 가라고 주소를 적어 놓기도 한다.
* *
아까 실려간 그 할머니를 보며
오늘은 유난히 여러 상념에 젖게 된다.
(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 )
( 어느 노인 다음에 나의 차례가 될까 ? )
( 한 겨울, 한 밤중에 자다가 불길에 휩싸여 잠옷바람에 황당스런 모습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추하게 실려가게 되는 건 아닐까 ? )
그래서인지 아니면 어쩐 다른 일로 인지 잠을 잃고 눈을 말똥히 뜨고 새벽을 맞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을 염려하며 그것으로 스스로
스트레스를 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한심하고 우수꽝 스런 짓 일게다.
마치 지진이 날까봐, 쓰나미가 올까봐 지금부터 지하실에 들어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 될 것이니 말이다.
매일의 일상에 충실하면 무슨 일이 닥치던지 그건 내가 결정하는 일이 아니잖은가 ?
내가 할 수 없는 일로 염려하느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여야지.
늘 할 일없어 앉아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그 할머니들도 아마도 나처럼 별볼일로 또 별볼일도 아닌 일로도 자주 들락 거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마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우리도 너처럼 다 해보고 이제 그 끝자락에 이렇게 앉아 있는 거란다.
그래도 무릅팍 성할 때 부지런히 다녀, 이 사람아. ”
(우편배달부 )
내가 며칠째나 기다리고 있는 소식이 있어 오늘은 현관에서 내가 흉 보던 그 할머니들 틈에 나도 끼어 앉아 우편배달부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채워 넣기가 무섭게 열어 보았다.
오늘도 오질 않고 광고 쪽지들하고 고지서만 몇장 들어 있었다.
시큰둥해서 돌아서는데
그 아저씨가 , ” 왜, 기다리던 것이 안왔나 보구나 ? 실망하지 말고 내일까지 기다려 봐.
곧 올테지 뭐. ” 그렇게 다정하게 나를 달래준다.
방으로 돌아와서 우편배달부를 생각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직업중에 하나일지도 몰라. )
매일같이 밀려 오는 우편물을 일일히 기다리고 있을 그 주인공들에게 배달해 주는
직업, 얼마나 멋진가 ?
물론 그중에는,
슬픈 사연도, 빗을 빨리 갚으라는 독촉장도, 심지어는 나를 괴롭히고 악담마저 하는
그런 괴로운 사연도 더러는 섞여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모든 다른 사연들이 바로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들이 아닌가 ?
언제나 기쁘고 즐거운 나날일 수는 없지 않은가 ?
우편배달부는 날라다 주는 그 봉투안에 어떤 사연들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다만 사람들이 보내고 받는, 살아가는 사연들을 배달해 줄 뿐이다.
* *
나는 오늘 편배달부가 되어보고 싳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배달부가 아니고 언제나, 또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만 배달해 주는 배달부가 되어보고 싶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
어떻게 모두에게 기쁜소식만 전할 수 있을까 “
있다.
바로 나의 곁에 기쁜소식이 있다.
하느님의 복음.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또 있을까 ?
그렇지만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
” 할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 하느님안에서는 불가능이란 없다. “
주님의 말씀이다.
이날이 바로 그 날,
이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 (시편 117)
( 친구 )
유교문화는 우리에게 많은 좋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고 그것들이 우리 생활의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예의를 지키고, 웃사람을 존경하고.. 얼마나 좋은가 ?
특히 어른의 머리를 쓰다듬고 버르장 머리 없는 여기 아이들을 보느라면
유교문화를 소개한 우리의 선조들에게 고맙다.
그런데 오늘 나는 한가지 못마땅해 하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친구에 대한 개념, 관념에 관해서이다.
우리는 오랜 잘못된 전통문화에 젖어 살아 왔고 지금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말고라도 생기발랄한 젊은 세대들도 별 예외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친구란,
나이는 동갑 이라야 되고,
남녀 이성간의 친구나 배우자도 남자는 나이가 서너살 정도는 더 많아야 하고,
키도 남자가 반드시 조금은 더 커야 하고,
남자가 공부를 더 많이 했거나 돈도 더 많이 벌어야 조건이 맞는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왜 꼭 그래야만 하나 ?
나 자신이 상대적으로 뭔가 모자라고 부족해서 그런 열등심리의 반사작용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기성의 고정관념에 반항하고 싶다.
왜 우리는 좀 더 활짝 열고 틀을 깰 수 없는 걸까 ?
경우에 따라서,
더러 여자 나이가 더 위면 왜 안된단 말인가 ?
여자가 남자보다 키가 조금 더 커서 어디가 덧날 일이라도 있나 ?
여자가 때로 더 좋은 직장을 갖게되어 남자보다 더 벌어 들여와도 남편을 인격적으로 무안하게 만들어 주지 말고 마음 편하게 해 주면 부인의 권위가 손상될까?
이성으로서가 아닌 순수한 친구란 개념만으로 말 할 때,
가령,
80 대 할머니와 청년,
70 대 할아버지 와 젊은 재기 발랄한 여인,
학생과 선생님,
경찰관과 죄인.
부자와 홈레스 걸인.
크리스챤과 불자,
신부님과 무신론의 개똥 철학자.
왜 이들 사이는 어색하지 않은 순수한 친구사이가 될 수 없는건가 ?
예수님은 우리가 흔히 갖는 그런 차별없이 모두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사랑하셨다.
죄인, 세리, 간음한 여인, 문등병 환자, 어부, 살인하여 함께 십자가에 달린 죄인마저도.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나누고,
서로 다른 생각을, 사상을 철학을 나눌 수 없단 말인가 ?
서로 동의할 수는 없어도, 서로의 다른 점도 존중해 주고 ,
이끌어 주고 또는 따라가 주며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너무 좋겠다.
” 혹시 지가 젊은 여자친구 하나 만나고 싶어서 괜히 엉뚱한 소리 하고 있는 거 아냐 ? “
어떤이가 그렇게 의심했다면 구태여 아니다, 그렇다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 If I do, what’s wrong with it. Uh ? ”
미스터 로져스 아저씨가 생각난다.
” Won’t you be my neighbor ? Will ya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