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님 당신의 왕국이 올 때 저를 기억 하소서.
오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음을 상기하며 그리스 도 왕 대축일을 지낸다.
“고통당하시는 왕.”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다. 아니 생각해 보기 조차 싫은 이야기다.
왕이신 그 분의 삶을 살펴보면, 단죄하기 위함이 아니고 함께 사시 려는 듯,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지내셨다. 자기를 올 바로 볼 수 있는 이들은 겸손이 회개의 동기가 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까? 아버지의 유산을 모조리 탕진한 아들은 배고플 때 비로소 회개했고,
(루가 15, 16-18) 성모님도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고 부요한 자들을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루가 1, 53)하고 노래하셨다.
하느님께 가는 길은 선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악을 통해서 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말일까? 악은 하느님께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불러들이는 도구가 된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우측의 강도의 경우 가 그러하다. 그는 악을 일삼는 자였지만
십자가 위에서는 십자가에 함께 달리신 왕의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변해 있 지 않은가?
사람들 마음에 깊이 박혀있는 것들은 악한 생각들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마르 7, 21-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인간의 마음속에 악이
뿌리 박혀 있다면, 구원은 와 있는 것이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 이 풍성하게 내렸고, 인간의
죄와 타락이 예수님을 이 땅 에 불러 온 것이지 않던가? 아오스딩 성인은 그래서 “오 복 된
罪여! 라고 인간의 죄를 찬미했고, 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안 에 와있다.”고 성서는 전하고 있다.(마태12, 28)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떤 의사가 수술을 하자고 하면 그는 펄쩍 뛸 것이라는 예수님
의 말씀은 참으로 지당하 신 말씀이다. 오늘날의 비극은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 하는 것
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악해 질수록 자신의 악함은 더욱 모른다. 마치 열이 심해서 헛소리까지
하면서도 본인은 아픈지 모르는 것과 같다.
깊이 잠들어 있을 때는 내가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비로소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듯, 죄악에서 벗어나야만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병이 들어야 의사를 찾듯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 달을 때 구세주를 찾게 된다. 이는
귀머거리가 듣고 싶어 하고 절름발이가 걷고 싶어 할 때 예수께서 치유하셨듯 이 죄를 치료해
줄 구원자의 필요성을 느낄 때 우리는 구 원받을 수가 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의사이신 왕이시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 마르 9, 12
루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참 으로 아프게 한 것은 작은 아들의
불순명이나 그가 지은 죄가 아니다. (큰아들은 자기의 순명을 강조하기 위해 동생의 불순명을
강조하며 화를 내고 있지만,) 기실 가장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떠났다는 사실이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남으로 아버지를 아프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는 아버지께로 되돌아가 다시 ‘염치없는 아들‘이 되는 수 밖에 없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기쁨이 특 히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기실
아버지께서 는 처음부터 아들을 사랑했기에 용서하고 계셨다. 사랑을 줄 수 없는 아들은
아버지께는 죽은 아들이였고 그 아들이 이제 살아 돌아왔다. 이제 돌아온 그 아들을 마음껏
곁에 두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 내면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을 앞 둔 오늘, 왕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면 죄인일 수 밖에
없 는 우리도 왕이신 그분께 이렇게 간청해야 한다.
“예수님 당신의 왕국이 올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Fr. 김 두진(바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