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침 뱉기

 

누워 침 뱉기 

선물을 받을 때 멋진 포장지에 싸인 것을 받으면 일단 기분이 좋다. 그러나 가끔 포장지가 너무

멋있어 선물을 뜯기가 아까울 때가 있다. 포장보다는 내용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뜯기를 주저거린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오늘 아침에

묵상을 하면서 누워 침 뱉기가 자꾸만 머리에 돈다. 수도생활을 하는 나로선 영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한번 누워 침을 뱉어보려 한다. 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다보면 규정 자체에 얽매일

때가 많다. 수도생활에서 얻는 유익함을 찾으려고 수도원에 머물면서 기도하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으며 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규정으로 얽매여져 법제화하게 되면

이렇게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수도

생활은 이런 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규정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규정 안으로 들어와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도생활을 하는 것은 수도생활이 주는 유익함 때문이다. 그 유익함을 어떤 이는

기도에서, 어떤 이들은 활동에서, 또 어떤 이들은 사람과의 만남과 섬김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은 수도생활의 기본이라며, 이것을 규정화 해 놓으면

활동하는 사람들과 사람과의 만남에서 섬김을 찾는 이들은 Outsider로 전락하고 만다. 해서

무엇을 규정해 놓고 법제화 해 놓으면 어떤 사람들은 올바른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무가치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불편함이 있다.


 

기도이던, 활동이던, 사람을 통해서건, 수도생활의 유익함을 찾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하는 것이 옳은 일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 못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기도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고, 활동하지

말자는 말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람들을 만나지 말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수도생활은 존재할 수 없고, 활동하지 않는 고난회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신자들과의 협력

(collaboration)을 외치면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도하는

사람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기도만 하면 어떻게 먹고 살 것이며 활동만 하면 또 어떻게

수도생활을 영위할 것이고, 밖 에서 사람만 만나면 어떤 의미로 수도생활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일까? 적당히 기도하고, 적당히 활동하고 적당히 사람 만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물론 여기서 표현한 적당히라는 말은 철저함의 다른 표현이라 해도 좋다. 우리가

적당히라고 쉽게 말하지만 쉽게 말하는 것처럼 쉽게 지켜지지 않는 것이 적당히

일테니까…………


 

조금 다른 각도에서, 예수께서 손 안 씻고 음식을 먹는 것이나 안식일에 아픈 이들을

치유하시며 일하시는 것은 율법을 무시하는 처사일까? 법조문 자체를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율법의 정신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즉 포장이 너무 근사해서 포장에 넋을 빼앗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많은 형제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기도가 그들 생활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들의 사도적 활동이 수도생활의 중심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섬김이 그들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나 자주 멋진

포장지에 눈이 멀어,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내 나름대로의 잣대로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우쭐거리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는가?

 

 

사실 규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경우 옳다. 경우를 따져도 그렇고, 실제를 보아도

그렇다. 해서 그들을 반박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해봐야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규정이 사람을 옭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규정은 다 옳은 것이지만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모든 이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룰은 허점이 있을 수 있음을 함께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고인이 되셨지만 교회법을 강의 하시던 신부님께서 강의 첫 시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법은 사람들이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가치이다.”지극히 옳으신 말씀이다. 하지만 상식을

살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사람들이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가치를 지키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이 서로 다름을

무시하고는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늘 그 자리에 머물 밖에 없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나저나 율법의 알맹이는 뭐고 율법을 포장한 것은 무엇일까? 오늘 율법을 포장한 규정을

지키며 내가 만든 잣대로 사람들을 이리저리 잴 것인가 아니면 규정 보따리를 풀어헤쳐 그 안에

담긴 사랑인 율법을 실천할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 내게 들려진 복음 말씀이다. 공동체 안에서

살지 못하고 떨어져 살면서 공동체가 그리운 요즈음,……….. 내가, 기도 좀 한다고 기도 시간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아예 안 들어오는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리는 포장에 살았던 시간들이 부끄러워지는 것은 공동체 생활이 그리워 그려지는 누워

 침뱉기가 아닐까 싶다. 기도하기에 남을 판단하고 남에게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면

차라리 그 포장지인 기도를 찢어버리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오늘 아침 묵상하면서 그분께 집중하려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꾸벅 졸더니 결국 졸린 소리만

이리 저리 늘어놓아 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헷갈린다. 그래도, , 그나저나, 기도는 우리네 같은

 사람들에겐 매우 중요한 덕목이지만, 또 기도가 전부는 아닐터이다.



                                            – Fr.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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