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순례

사순절,
그날도 금요일이 저물고 있었다.
나는 여러 교우들의 십자가의 길 기도모임 대열에 슬그머니 끼여들었다.
여러 해 동안  하였던 익숙한 솜씨로 돌아가며 기도문을 따라 하였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구석은 허전하고 텅 비여있는 느낌이 전해진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십자가의 주님과 일치되어 그 고통도 내 뼈에 사무치도록 공감하며
나의 십자가를 지고 회개하며 주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걷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의식화된 순례길을 습관적으로 여행하며 스스로에게 만족함에 취해 있을 뿐인가?
아무리 자기합리화로 위장하려해도 나는 후자에 머물러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부끄러워진 나는 눈을 감았다.
십자가도 없이 그 대열에 섞여 가벼운 산책이나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보려 나의 영혼은  내 육신을 빠져나와 순례 길을 따라가 보았다.

제 1처 : 빌라도에게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총독관저에서 걸어나오시던 예수께서
           나와  눈이 마주치셨다.
           두려워 눈길을 피하려는 나에게 주님은 “나의 분신아.” 하고 부르신다.
           ” 내가 주님의 분신? “
           그리고는 물으셨다.
           “너도 이 세상의 합법적 지배자에게 순종할 수 있겠느냐?”
            주님께도 순명을 주저하는 이  죄인이 하물며 세상의  지배자들에게야
            또 얼마나 비굴하겠나이까?

제 2처 : 로마 병정들이  하느님을 둘러 싸더니 무거운 나무십자가를  올려놓는다.
           주님은 다시 나를 돌아다 보셨다.
           “너도 자신을 버리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
            주님의 눈빛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예,” 하지도 못하고 ” 아니오.” 도 못하는 비겁한 나는 공연히 가슴만 쿵쾅거리며 엉거주춤 눈을 내려 깔고 있었다.

제 3처 : ” 아!. 예수께서 쓰러지신다.”
            만물의 창조주가 나무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셨다.
            넘어지신 주님이 또 다시 돌아보시며 나의 눈길을 찾으신다.
            아 !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분과 눈이 마주치는게 두렵다.
            골고다 언덕길에 몰려든 구경꾼들 틈에 들어가 숨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워져서 생각하였다.
            ” 아니, 전능하시다던 하느님이 어째 저런 나약한 모습이람?
              그 바리사이들의 주장이 맞는 거 였을지도 몰라. 난 어쩜 좋을까?”
             그래도 기회주의자는 좀 더 두고보기로 하였다.

제 4처 :  틈새로 내다보니 주님의 어머니가 아들앞에 서 계셨다.
             채찍맞고 발로 채이는 주님을 보시고도 나처럼 뒤로 숨지도 않으시 고 억장이
          무너지련만 의연히 그자리에 서 계신다.
             아버지의 뜻을 쫓아 걸어야하는  아들의 길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일까?

제 5처 :  군중틈에서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려 난 그들 뒤로 숨어 버렸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내다보니 로마병정이 시골 키레네에서 올라오던 시몬이 라          는 사람더러 쓰러진 그 이를 도우라며 밀어 넣고 있었다.
             일어서신 주님의 눈길이 내 쪽을 돌아다 보고 있었다.
             ” 너는 너의 일상에서 시몬이 되어라.
               힘없는 한 이웃을 도울때 너는 곧 시몬이 되는 것이다.”

제 6처 :  용감한 여인, 베로니카.
             여인이었음에도 나처럼 숨지도 달아나지도 않고 주저없이 사람들을 비집고
             나가 주님의 얼굴에서 피땀을 닦아드린다.
             베로니카는 왜 나를 돌아다 볼까?
             부끄럽고 비겁한 나를 일깨워 주려는 것일까?

제 7처 : 주께서 또 쓰러지신다.
            눈길을 피해 숨고 달아나려는 나를 주님은 잊지않고 계속 찾고 계셨다.
            ” 너는 나를 믿어라.
              그리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네 십자가가 너를 힘에 부치게 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그래도 이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제 8처 : 예루살렘 여인들이 주님의 곁에 다가와 그 분을 위로하고 있다.
            핏자국으로 얼룩진 상처를 보며 슬퍼하는 여인들을 보시고 주님마저 서글퍼져        그 여인들을 위로하신다.
            여인들도 저렇게 떳떳하련만 어찌 나는 이렇게도 비겁할까?

제 9처 : 주님은 이제 정말 기진하여 세번째 쓰러지셨다.
            주님의 눈길은 말씀하고 계셨다.
            스스로 원하셔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고 가엾은 모습이 되셨다 하신다.      그 러니 바로 그이가 메시아이심을 의심하지말고 믿고 그 믿는 의지를 끝까지 간직하라 이르신다.

제 10처 :  로마병정들은 이제 해골산 언덕에 당도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옷을 벗겨 나누
어 갖는다. 창조주의 이세상에서의 마지막 재물, 그 옷마저 빼앗기셨다.
               ” 이제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므로써 모든 것을 소유하신다.” 고 말씀하셨다.          저렇게도 분명하고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땅 한 평을 얻으면 두 평을 늘리려하고 곡식 한 자루 더 거두면 창고를 늘려 지으려고만 하는 미련함을 어찌하면 더부러 사는 마음으로 채울 수 있을까? 결국은 내 것도 아닐것들을.

제 11처 : 십자가에 하느님을 묶은 병정이 못을 박고 망치로 내려친다.
             한 번 내려 칠때마다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고통이 주님의 머리속을 뒤 흔든다고 호소하신다.   군중속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묻고 있다.
             ” 너, 목석같은 자야,  눈물도 없느냐?”

제 12처 : 주님은 이제 이승에서의 목숨을 떠나보내셨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침상이었던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 분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던 그 제자와 막달라 여인 마리아 들을 내려다 보시다가 그리고 아직도 사람들뒤에 숨어있는 이 죄인마저  잊지 않으시고 물으셨다. ”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너를 사랑하였듯이 서로 사랑하여라.”
주시는 이 계명을 지켜야만 하는데 잘 되지는 않고 이웃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일은 얼마나 쉽고 잘 되기만 하고…

제 13처 :주님이 사랑하셨던 그 제자와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려 모여 왔다. 예         수님은 이제 이 세상에서의 미사를 완성하신 것이다.
            나에게도 미완성된 미사를 이루라 하신다.
            그것은 새로운 계명인 사랑을 실행하므로써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지금 구원의 의지를 지키고 있는가?

제 14처 : 무덤에 묻히신 하느님
              이제 찾아올 여인들은 빈 무덤을 보고 울며 먼저 달아난 제자들에게 알리려 달려갈 것이다. 엠마오의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어찌 두 사람뿐이겠는가?
매일 만나는 삶에서 만나는 주님도 알아보지 못하고 아니면 알고도 외면하는 나는 과연
진정으로 회개하여 새로워 져서 도적처럼 오신다는 주님의 오른편에 세워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순절을 지낼 것인가 아니면 늘 하듯이 인쇄된 기도문이나 따라 외우며 자기 만족감에 도취되어 길에서 산책이나 반복할 것인가  풀어야할 숙제를 오늘도 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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