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꺼!
모처럼 화창한 아침에 창을 열어 제꼈습니다.
싱그러운 봄 내음이 콧끝을 간지러 주었습니다.
살아나는듯한 기분이 내친김에 청소 도구를 손에 쥐었습니다.
묵은 때와 먼지를 벗겨내 보고 싶었습니다. 곧 그만두기로 했지요.
지금은 아닌듯이 보였습니다.
사순절에 합동고백성사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 벗어버리면 그때 신부님 앞에서 장궤하고는 무엇을 고할까 그 게 걱정이였나 봐요. 생일날 목욕하려고 때를 껴안고 사는 자와 뭣이 다른지. 쯧 쯧…
그래서 기왕에 연 창문을 그냥 닫기도 쑥스러워 목소리를 가다듬고나서 제깐에 폼을 잡고 한 곡조를 창밖에다 대고 뽑았습니다.
좀 녹이 쓸었다 싶었지만 듣는 사람도 없는데 후 캐여?
바로 그때 옆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거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시끌어, 노래라는게 처음부터 음정과 박자 둘 다 맞출 자신이 없거들랑 한 가지라도 맞아야되는 거 아냐? 이건 도대체 뭐 깨지는 소린지.”
내 노래에 대해서 듣기는 좀 불쾌한 평론이었지만 좋게 말했습니다.
” 아, 미안해요. 국민학교 5 학년때 부르고 처음 하는 노랜데 그 정도면 좀 봐 주시지,
그리고 이 노래는 2 절까지 있는 거니까 기왕 시작한 것 마자 해야지요.”
“정말 이렇게 막 나갈 꺼야? 내가 심장도 안좋은데 그 솜씨 2 절까지 듣다가 어떻게 되라고.오페라의 나라, 우리 이태리 사람들이 그 노래 들으면 까무러치지 않고 배길까?
아마 지난번 저더러 씽글이냐고 묻는데 제가 퉁명스럽게 “난 따불이야.” 그랬더니 아직 화가 안풀린 모양입니다.
얌전히 창을 도로 닫았습니다.
행복한 줄 알아야
오래전에 엘에이에 사는 동창 아이한테 놀러갔을 때 밖에서 저녁을 함께 먹고 집에 가서 제가 제수씨라고 부른던 그 부인이 몸살기운이 있으니 친구를 위해 커피를 대신 끌여달라 했을때 친구 왈, “난 말이야 까물어치더라도 좌우간 절대 부얶엔 못들어가. 남자 체면이 있지..” 부인이 혀를 차며 “봤지요? 제가 어떤 사람과 사는지..”
그런데 얼마전에 전화가 와서 받으니 그 친구는 아주 완전히 풀이 꺾여 있었습니다.
얼마전서부터 (전업 주부)로 몰락했다는 사연이었습니다.
똑똑한 부인은 사장이되어 잘 나가는데 막상 자기는 은퇴하고 고개 숙인 남자가 되고나서는 이제 부얶은 완전히 자기가 장악하게 됐다고 울상입니다.
” 야, 그뿐인지 아니? 멍청이 앉아서 연속극 보는 모습 이쁘지 않다고해서 테레비도 맘대로 못본다구.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다는 거냐? “
“그래두 그만하면 넌 행복한거야, 이사람아. 라디오도 맘대로 못듣는다고 생각해봐.”
” 넌 지금 날 위로하는 거냐, 약 올리는 거냐? 그리고 집 사람이 나이 먹어가면서 웬 잔소리는 그리 많냐? 눈만 뜨면 잔소리에 못살겠다니까.”
” 넌 행복한 줄 알아라.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잔소리조차 해줄 사람이 곁에 없다고 생각해봐, “
” ……..”
” 야, 듣고있니? 아, 여보세요? 야!”
친구가 전화를 끊은지 오래되었나 봅니다.
120 살 까지만?
양로원에서 만난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서 아주 건강하신 편인데도 늘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 아이, 내가 너무 오래살아. 고만 살아야 할텐데…”
하느님앞에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치고 나서도 바로 하느님께 불경스러우리 만치 또 습관처럼 그만 살아야지 타령하십니다.
“할머니는 얼마나 좋으세요. 아프시지도 않고 그러니 그날 그날을 기쁜 마음으로 사시지요. 아프지만 않으시다면 앞으로도 30년은 더 오래 사시면 안된다는 법 있을라고요.”
“아니 지금 30년이라 했우? 그럼 30 년후면 내가…, 나보고 120 살까지만 살라고?
정말 듣고보니 섭섭하네. 아니 나보고 겨우 30 년만 더 살라니.. 이런 섭할데가.”
그렇습니다.
염세주의자가 아니라면 아니 어쩌면 그 염세주의를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본능은 오래 살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오래 살고 조금 살고 하는 일은 내 손에 달린 것이 아니고 생명을 맡기신 분의 고유 권한일진댄 나는 그런 일 걱정하느니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면서 기쁘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처럼 모두가 모두 힘들고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래도 더 나뻐지지 않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나 보다도 더 나쁜 사람도 있으려니 위로받으며 뜻있고 보람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고 희망해 봅니다.
지금 오히려 내생명도 아닌 남의 생명을 가지고 농단하려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엄마 뱃속의 생명을 맘대로 죽일 수있도록 법을 고치려고 합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할 명분으로 생명의 근원이 되는 줄기세포의 연구를 맘대로 하자고 합니다. 이 것은 큰 함정입니다.
내 아픈 곳을 고치자고 다른 생명을 그르친다면 그건 무엇인가요?
남을 살리려고 내생명을 희생하는 살신성인도 있는데 나 살자고 남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오늘 다른 때 보다도 더 고통스러우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봄은 오고야 말 것 입니다.
사람이 주님께 못을 박아도 주님은 부활하여 오시고야 말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희망을 지켜야 할 이유일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