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신부의 성탄 메시지

 

 

 

 

본당 신부의 성탄 메시지

 

 

 

아기 예수님 오늘 탄생하셨도다. 알렐루야!

 

아기 예수님이 우리의 세상을 밝히러 오셨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성탄 축하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각 가정에 예수님의 겸손하심의 은총이 충만히 내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감싸며 돌보아 주는 성가정 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 주 대림 4주일에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믿음은 구원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주보에 글을 쓰고서는 이렇게 의심으로 시작하는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저는 의심과 의구심으로 이번 대림을 시작했습니다. 대림 동안 "왜 우리는 예수님을 또 기다려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왜 예수님은 매년 우리게 오셔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 1,1-3)

성탄 대축일 낮미사의 복음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이 이럴진대 우리가 예수님을 또 기다려야 합니까?

임마누엘의 주님이시라면 늘 우리와 함께 계셔야 하는 분이 아니십니까? 논리적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다시 오시도록 재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임마누엘의 하느님과 늘 함께 하지 못해 매년 성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사실 이번 대림절 동안에 별 준비 못한 채 성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성탄 장식에만 정신이 팔려 기다림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했습니다. 신앙 안에서 주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주님이 늘 우리 밖에 계시는 분이시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고백성사를 들으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습니다. (일 년의 두 번은 내가 지은 죄를 보속하기 위해서 고백성사실에 들어갑니다. 여러분들만 고백성사가 싫은 것이 아닙니다. 저도 참 싫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죄를 질것을 뻔히 아는데 왜 고백성사를 보느냐고 투덜대면서 고백성사를 보지 않는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그럴듯하지만 맞지 않는 이야기 입니다. 배가 다시 고플 텐데 밥은 왜 먹을까요? 아무튼 사람은 왜 이렇게 똑같은 죄를 반복할까요? 우리 안에 있는 그 검은 힘은 무엇일까요?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우리는 이 죄에서 건져달라고 빕니다. 기실 죄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아프게하고 또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죄에서 벗어 나고자 합니다 . 하지만 우리는 똑같은 죄를 반복함으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스스로를 단죄하곤 합니다.

 

사도 바오로도 같은 체험이 있었습니다.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고통이 내게서 떠나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번번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게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12,7-10)

 

어둠에서 빛이 비쳐오라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당신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고린토 후서 4:6-7)

 

예수님의 다시 오심 즉 제2의 재림 물론 세상의 종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지구의 종말을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한 최후는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각자의 죽음일 것입니다. 요새 흔히 하는 말로 "'최후'라고 쓰고 '구원'이 라 읽는다."하는 것처럼 신앙인의 언어로는 구원입니다. 우리를 맞을 구원은 바로 그분의 탄생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고린토 전서 1:23)

 

십자가의 선포는 유력한 사람이나 힘있는 사람들에게 선포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힘없고 작은 사람들에게 선포되어 집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에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분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멸시 받은 사람들,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고린토 전서 1:26-28)

 

바로 그것이 구유에 누우신 그리스도의 모습이고 그 모습을 통해 배우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화려한 왕궁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조그만 여관방에서라도 주님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다르셨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그리고 밥그릇에 누워계신 구세주가 바로 우리가 믿는 구세주이십니다.

작년에 말씀 드린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냄새 나는 사람들입니까? 더러운 사람들입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는 가까스로 구세주를

모실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다면 내 주위에 냄새나고 더러운 사람들 안에서 구세주를 보십니까?

 

Merry Christmas! 라고 인사할 때 적어도 이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더럽고 냄새 나는 곳에 누우셨으며 짐승의 밥 그릇 안에 밥이 되어 누우셨음을. 그래서 우리들도 서로에게 따뜻한 밥이 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는 미사성제의 말씀을 살아가는 것이고, 우리 가정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전능하신 분께서 큰일을 세상에 하시고 계심을 알리는 복음선포가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우리의 더러움과 냄새 때문에 다시 오셔야만 하시는 그리스도께 기쁜 마음으로 경배 드립시다.

 Merry Christmas to 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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