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카 1, 45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놀라운 힘으로 자식들을 구하고, 가정을 위해서 쏟는 희생의 이야기는 흔히 있는 이
야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토록 어머니들은 자식들과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나라도 그랬지만, 예수님께서 살던 시대나 복음사가들이 살던 때
의 이스라엘에서 여성들의 위치란 매우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는 여성들의 위치가 매우 하찮은 것으로 보도되고 특히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을 준비할 때 언론들이 이라크 여성들이 당하는
학대를 TV에 내보내어 정치적으로 이용한 적이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심각하다 합니다. 하물며 예수님 시대인 이천년 전에는 여성들의 지위가 어땠을까요? 같은
질문으로 마리아는 어떤 위치에 있던 분이였을까요? 지금은 우리가 신앙 안에서 공경하는 분이지만, 당시의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접할 당시 그분의 나이는 대략 13~16세 정도의 나이였고, 우리가 잘 아는대로 나자렛이란 시골동네의 처녀였습니다.
나자렛이란 동네는 구약성서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곳입니다. 놀랍게도 이런 산골에 사는 어린 처녀에게 하느님은 큰일을 맡기려 하십니다. 아무리 신앙 안에
서 믿는다 해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런 힘도 없고 하찮은 나이 어린 시골처녀에게 하느님의 일을 맡기시다니요? 그러나 우리 구원의 시작은 그렇게 시
작되었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느님께서는 하찮은 어린 나이의 시골 처녀를 통하여 시작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는 마리아의 순명의 말씀으로 주님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고, 위대한 시골 처녀의 올바른
선택으로 세상은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믿는 우리 모두가 지녀야할 믿음의 덕목입
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종들에게 그 분이 시키는대로 한 결과, 물이 술이 되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가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치니 엄청나게 많은 양의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물 위를 걸어 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일을하는 사람들은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께서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믿음의 행위는 명령하는 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바탕되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놀라운 일,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일, 기뻐할 일은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복음을 읽으니, 뭐든지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
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비로운 구원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불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이치에 맞지 않는 것까지도 품어 안을 때
믿음의 세계가 열리게 되고 그래야만 하느님이 개입하실 수 있는 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앙 안에서의 큰일은 우리 일상의 논리를 넘어 하느님 말씀안에 담긴 뜻을 알아듣고 행하는 실천적 믿음이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생활
안에서, 또 일상의 사건 안에서 기적이 흔치 않은 것은 늘 합리와 타당성, 확실성을 추구하여 하느님의 힘이 개입하실 틈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
다. 토마스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고 이치에 맞는지 확인하지 않고는 주님이 다시 살아 나셨음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주님은 못으
로 뚫린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며 그의 닫힌 눈과 마음을 열어 믿게 하셨습니 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들이고 그런 이들은 세상의 눈으로는 하찮은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자기 힘 보다는 하느님의 힘을 믿고 있으니 이
치에도 안맞고 힘도 없어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하찮은 사람이 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려면 나는 하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커다란 일 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Novina를 통해 9일 동안 특별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찮음을 통해서 그분의 은총이 오게 되고 그 은총 안에서 그분의
뜻을 실천할 지혜와 힘이 옵니다. 그렇게 될 때 성모님께서 노래한 “전능하신 분께서 큰 일을 내게 하셨습니다.”라는 마니피캇을 노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어머니의 위대함이 만나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도 말씀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를 겸손되이 청하
고 계십니다. 복음의 참 뜻대로 기쁜 소식이 세상에 선포되어지기를,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어지기를!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바라며 그 말씀을 살아내려는 사람들
안에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실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성탄을 기다리며 주님의 뜻을 이루려사는 신앙인이 된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엘리사벳의
칭송을 듣게 되지 않을까요?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 Fr. 김 두진(바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