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아닌 것들

용서가 아닌 것들

 

지난 2주에 걸쳐 용서에 관한 글을 올렸습니다. 이번 주에는 용서가 아닌 것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용서의 과정이란 책에서 (성바오로 출판사 윌리엄 A. 메거닝 지음 성찬성 옮김) 인용하여

내 생각을 덧붙였음을 밝힙니다. 저작권의 문제를 떠나 온전한 내 생각이 아니고 책을 보고 배운 글입니다.

여러분들도 시간이 나시면 한번 읽어보시길 권고합니다.

 

첫째로 용서란 망각이 아닙니다. “용서하고 잊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명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난 일에 진정한 가치를 아는 것이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잊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한 예로 손등에 상처가 났는데

그 상처가 아물 때 까지 잊힐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가 쉽게 잊히리라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거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바로 잊힘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기에 망각은

용서의 부산물은 되겠지만 용서의 전제 조건은 절대로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면담을 하면서 상처 준 어느 사람을 용서했다고 생각했고, 또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을 볼 때 마다 그 사람이 내게 한 짓들이 생각이 나서 나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고 말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처를 기억함으로 그 상처의 의미를 찾아낼 때 치유의 시작과

함께 용서의 시작이 되는 것이겠지요. 우리 교회가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일어난 비극을 기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또 그 책임자들을 용서하려고 그 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침묵하고 덮어주는 것이

결코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로 용서란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의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사면해 주는 것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 권한입니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다면 그 책임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나에게 또 사회에 또 그 자신에게 그리고 하느님에게 그 잘못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또한 용서는 ……..인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삶을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고, 지난 상처를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즉 우리가 살면서 받은 상처를 하느님의 뜻으로 돌림으로 먼지

털듯이 털어내고 픽 웃으며 버텨나갈 수 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쿨 한척, 멋있는 척하며 받은 상처를

애써 외면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 일입니다.

 

용서는 딱 잘라 하는 일회적 결단이 아닙니다. 용서가 홀가분하게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상처는

현재의 사건으로 인해 재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자나고 치유가 되면서 그런 현상은 점점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삶을 당신 손에 맡겨두지 않겠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내가하는 일은 내가 책임진다.

즉 당신이 가하는 고통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자유롭게 결정하겠다. 나는 나 자신을

해방시켰고, 앞으로 내가 선택한 대로 살겠다.” 결국, 용서는 받은 상처에 의해 내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고 상처를 치유하고 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의 결단입니다. 해서 용서란 나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강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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