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주는 숙제

부활이 주는 숙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지난 성삼일을 되돌아봅니다. 치울 것도 많았고 다시 정리할 것도 많았던 지난 삼일 동안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영적으로도 매우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 수고해주신 사목위원들, 아름답게 전례를 위해 밤늦게까지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성가대원들 그리고 전례를 위해 준비해 주신 전례위원들과 수녀님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또한 6개월이 넘도록 열심히 하느님을 배우고 새롭게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새 영세자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말씀도 전합니다. 성토요일 기나긴 전례를 통해서 말씀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배웠고, 어둠이 아닌 빛의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영세자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들이 세례를 받도록 열심히 함께 하시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신 봉사자들과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바쁘고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지난 삼일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곰곰이 되새겨야 할 것은 부활의 의미입니다. 부활하신 그분의 모습이 우리의 것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성목요일에 그분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섬기시는 모습으로 한 솥밥을 먹게 된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이 되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섬김을 받았으니 섬기는 것은 예수님의 가족, 하느님의 자녀가 해야 할일이 되었음을 기억합니다. 이제 우리들을 섬기시기 위해 겟세마니에서 당신의 고난을 받아들이시기로 작정하신 뒤 사월의 가장 잔인한 달 중에 가장 잔인한 날 그분은 죽음의 어둠을 뚫기 위해 가장 치욕스런 방법으로 십자가에서 알몸으로 수난을 당하시고 죽으십니다. 바보스러우리만치 아무런 저항 없이 모욕과 치욕 그리고 엄청난 아픔을 받아들이셨습니다. , 예수님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피를 흘려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질식사입니다. 숨을 쉴 수 없어 돌아가신 것이지요. 십자가에 달린 채로 숨을 쉬려면 가슴을 들어 올려야 하는데, 가슴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던 것이지요. 물론 피도 흘리셨겠지만 치사량의 피를 흘리시기 전에 기진맥진 하시어 숨을 쉴 힘조차 없어 질식사 하셨습니다. 고통으로 치자면 엄청난 고통이었고 숨이 멎을 때까지 최선을 다한(?) 고난이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아니 사람들의 교만이 하느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당신의 외아들을 죽인 인간들을 그럼에도 쓸어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는 삼일 만에 그분을 부활시키셨다고 오늘 제 1독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증언합니다. “그들이 (유다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10,39-40 그 시대 유대인들이 사흘이라고 말할 때는 72시간을 의미하지 않고, 결정적인 날을 의미합니다. , 하느님이 원하시는 때에, 예수님을 당신 안에 살려놓으셨다는 뜻이지요. 예수님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고 사셨기에, 사람들은 그분을 죽여 없앴지만, 하느님은 그분을 당신 안에 살려 놓으셨다고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숨결, 곧 생명을 받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권위주의로 경직된 유대교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에게 절대적인 것은 율법이 아니라, 하느님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선하고, 고치고 살리시는 분이라, 예수님은 그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듯이, 예수님은 하느님의 생명을 사셨습니다. 오늘 베드로가 말한 대로 그분은 두루 다니며 선한 하느님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예수님이 살아서 행하신 하느님의 선한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자유롭게 당신의 일을 실천하며 살 것을 원하십니다. 자유롭게 살라고 주신 인간의 삶이기에, 율법에 얽매이고, 성전의 권위에 순종하며 살라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지닌 약점 때문에 돈에 얽매이고, 우리의 명예욕과 허례허식에 짓눌려 삽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성령과 능력을 받아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는, 오늘 베드로의 말씀은 사람을 짓누르는 것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킨 예수님이라는 뜻이기에 말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빈 무덤을 발견하였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 곧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가 함께 무덤에 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는 보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빛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확인된 사실이지만, 그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에서 신앙인의 길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을 믿고 배우는 사람들 안에 그분의 삶이 재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성전으로 요약되는 그 시대 유대교의 관행에 얽매이지도 않고, 유대교 지도자들의 권위에 순종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실천하고, 악마에게 짓눌린 이들이라고 그 시대 사람들이 말하던 병자들을 그 병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부활은 우리도 예수님을 배워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실천하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삶에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배웁니다. 예수님이 자유롭게 하신 실천들을 배웁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을 살아야 함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높여 허세를 부리거나, 남을 짓누르면서 죽음의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선한 실천, 고치고 살리는 실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실천 안에 자기가 해야 할 바를 읽어내고 실천합니다. 그런 공동체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살아 계십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분으로부터 배워서 우리가 하는 실천 안에 그분이 살아 계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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