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방문

친구의 방문

중학교 학창시절 제 고향으로 한 친구가 이사를 왔습니다. 경상도 사나이였던 이 친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집에서 하는 화원에서 일 했습니다. 그 친구의 화원은 학교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오며가며 들락거리던 우리들의 공개된 아지트 이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러 기타 치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놀고 웃던 고래잡이 집터였습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일탈을 꿈꾸던 친구는 자전거 하나로 전국을 돌 속셈으로 집을 나서 보름이 지나서야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대학 가는 친구, 직장 잡은 친구 등 이리 저리 흩어져 간간히 소식을 전해 들으며 서로를 잊어갈 무렵, 군대를 마치고 직장을 다니던 제게 오래간만에 친구로 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한 번 보고 싶어 연락했다는 말 외엔 별 뜻을 전하지 않은 친구라서 반가운 마음으로 회사 근처 식당에 마주 앉았습니다. 쥐꼬리라도 버는 내가 식사를 대접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시키려고 했지만, “오늘은 금요일이니 고기 먹지 말자.”는 엉뚱한 소리로 제 속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 그런 건 신부나 수녀들이나 지키는 거야. 우리 같은 사람은 먹어도 돼!” 이런 핀잔에도 슬며시 미소만 지을 뿐 간단한 국수 하나를 시키는 친구가 이상하기도 하고 또 반가운 마음을 거절하는 것 같아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국수를 다 먹고 이 친구가 하는 말, “나 신학교 들어갔다.” 신학교 들어갈 나이가 훨씬 넘어 힘들 테고, 또 고등학교도 안 나온 친구가 어찌 신학교를 들어갔을까 싶어 요즈음은 중학교 졸업하고 신학교 가니?”라고 생뚱맞게 물어본 나에게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 “검정고시 했다.” 반가우면서도 부러운 마음 그리고 왠지 모를 질투가 느껴진 젊은 시절의 감정을 온전히 담아 한 마디 뱉었습니다. “미친 놈!”………. 국수 한 그릇에 함께 소주도 마시고 이제 갈 시간이 되어서야 나도 그 친구에게 한 마디 고백을 했습니다. “나 곧 수도원 들어간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을 놀라던 그 친구가 하는 한 마디 미친 놈!”……… 나중에 친구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검정고시를 하면서 택시 운전도 하고, 트럭 운전에 안 해본 고생이 없던 그 친구에게 사제의 꿈은 강렬한 부활의 체험이었나 봅니다. 예수님께 빠져 미친놈이 된 두 청년의 새로운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살며 또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바쁘게 지내던 와중에서도 사제서품식에 마산으로 내려가 축하를 하고 광주로 올라와 종신서원을 축하하던 그 친구를 서로의 바쁨으로 슬며시 잊어버릴 즈음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정 지도 차 LA를 갔는데 그곳에서 한인 본당신부를 하고 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고, 남미로 선교를 떠나는 친구에게 작별의 인사도 못했는데, 어찌 어찌 간신히 늦깎이로 사제서품을 받는 나를 위해 미국까지 찾아와 축하해준 친구가 김 길상 안드레아 신부입니다. 이제는 문자나 전화로 곧잘 통화하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는 친구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속마음 털어놓고 웃고, 울 수 있는 동료가 있음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를 알게 하는 우정에 감사하며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기쁨의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습니다. 제가 3년 마다 하는 한국 방문 때 늘 찾아가 지겨우리만치 신세를 져도 불편한 기색 없이 늘 미소로 반기던 친구에게 처음으로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감사합니다.

 

욕지도. 서기 42년 낙동강하류에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의 형제 중 막내인 말로가 서기 443월에 지금의 고성 땅에 소가야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9대 왕계에 걸쳐 20개 도서 중에 욕지도, 연화도, 노태도, 적질도가 현 욕지면 관내에 있는 섬으로 이 시대부터 욕지의 지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욕지도란 지명이 소개되지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은 작은 섬이 거북이 모양으로 목욕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욕지라 일컬었다는 설이 있고, 유배지였기에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욕된 삶을 살았다 해서 욕지라 일컬었다고도 하는데 욕지가 유배지란 근거는 어디에도 없답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으로는 거기에 가 보면 사람들의 욕망을 알게 할 만큼 아름다운 섬이란 뜻으로 욕지도라고 불렸다고 하고, 김 길상 신부의 말씀을 빌리면, 거기에 한 말씀 더 보태 거기에 가면 욕망을 알게 되어 욕심이 생기는 섬이란 뜻으로 욕지도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오죽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욕망이 컸으면 아무도 생각지도 못한 그곳에 공소를 지을 욕심을 냈을까요


통영항에서 남쪽으로 30Km 즉 여객선으로 1시간의 거리인 이 섬에는 많은 관광객이 온다고 합니다. 물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위한 공소이기도 하겠지만, 그곳을 찾는 이들이 불편함 없이 미사를 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성당을 세운다는 점에서는 분명 복음적 사업이라 하겠지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19-20)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이 전해지는데 한 몫을 거드는 우리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멀리서 와 주신 김 길상 안드레아 신부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며 통영본당에서 하시는 일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시는 일이 되시도록 우리 신자 모두가 함께 기도하고 격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반갑다 친구야!!!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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