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건배! – Cheers!
세상에 먹는 것 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을까요? 오죽하면 먹고 죽은 돼지가 때깔도 좋다는 말이 생겼을까요? 누가 저에게 "무엇을 드실래요?"하고 물어오시면
대답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다 먹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 입에 맛없는 음식은 하나도 없습니다. 농담으로 내가 못 먹는 것은 단 하나 '없어서 못 먹는 것' 이라 말
하곤 합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건강의 기초가 되니 이 또한 하느님의 은총 아니겠습니까?
우리 민족들은 예로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또 먹는 것을 즐기며 춤추기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유명합니다. 아직도 노래방이 성업하고, TV 프로그램에서 대화
하는 프로그램보다 노래하고 춤추는 프로그램이 더 많은 곳이 대한민국입니다. 이렇게 놀기 좋아하는 문화는 상대적으로 잦은 침략이나 잦은 스트레스 또는 깊은
상처에서 그것을 잊기 위한 대안으로 생겼을 수 있답니다. 인류 역사 안에서 고난이 많은 민족일수록 노래와 춤과 시가 많다고 합니다. 맺힌 한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민족도 한 많은 민족이었기에 춤과 노래를 좋아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세상 어느 민족보다도 쓰라린 아픔이 많았던 민족이었습니다. 언제나 전쟁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었고, 나라 없는 백성으로 떠돌이 생활이나
불쌍한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한 맺힌 역사를 살아야 하기도 했지만 그들 주변엔 늘 강대국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잦은 전쟁과 폭력 안에서 얻은 그 한을 하느님 약속의 말씀에 희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이사 62, 5)
이스라엘 민족은 한을 가슴에 품고 사는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큰 축제인 혼인 잔치에로 자신들을 초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고 살았습니다. 그 희망에
기쁨을 부어 주시는 예수님을 오늘 복음에서 만납니다. 물이 술로 변하는 기적을 잔치집에서 베푸시는데, 요한은 이 사건이 때가 되지 않은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라 합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첫 번째 사명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으니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첫째 사명도 가정 공동체와 세상공동체를 기쁘게
하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마련하신 먹고 마시는 구원의 축제가 폭력과 빈부의 격차로 한껏 암울해진 세상에 한 판 축제의 장이 되도록 우리가
희망을 열어 제켜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고 묵상하다보면 항상 부딪히는 것이 이 천년 전에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는데, 지금은 예수님과 그분의 기적을 볼 수 없고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카나의 혼인잔치에 관한 복음은 참된 기적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믿음없는 사람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르게 된 제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신들이 따르는 분에 대한 신뢰, 곧 ‘믿음’ 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첫 기적으로 물이 포도주가 되듯, 물과 같은 그들 마음에 예수님의 맛과 향기로 가득한
‘믿음’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었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에서 우리가 지나치지 말아야할 것은 성모 마리아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고백합
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사도들 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협조자요, 믿음의 모범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예수님께 전구하십니다. 마리아는 교회와 세상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깊은 애정으로 살펴보시는 예수님께 전구합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교회의 은사’입니다. 교회의 은사는 오늘 2독서의 말씀대로 ‘공동선’을 위한 것임을 마리아를 통해 정확하게 짚어주십니다. 같은 성령 안에
서 지혜, 지식,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식별, 해석의 은사가 교회와 세상 안에서 보여지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 안에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되고 예수님
의 구원을 얻게 되는 결정적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무엇이 기적일까요? 우리 가운데 믿음이 생겨나고 있음이 기적입니다. 무엇이 기적을 일으킵니까?
가정과 세상과 교회에 대한 우리의 깊은 애정을 비롯하여 서로가 서로를 위한 전구, 곧 기도와 봉사가 기적을 이루게 합니다. 마리아의 전구(은사) 로써 물이 포도
주가 되고, 상상하지 못했던 믿음을 제자들이 가지게 되었듯, 우리가 바치는 기도와 사랑과 봉사의 삶은 각각 고유한 모습이 되겠지만, (활동은 여러가지 지만)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 (고린토 전서12,6) 이렇게 사랑의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의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의 성령께
서 우리 안에 머무르실 때 우리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밋밋한 물이 기쁨의 술로 바뀌는 기적을 이루어 내려면,
어머니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을 통해 성령의 은사로 기도와 사랑과 봉사의 삶을 기쁨으로 살아내어 기쁨을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
는 것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그분의 기적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단순히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에만 집중한다면 술이 깬 뒤 숙취로 몸과 마음이 허전해지는 듯 우리 인생도 허전함과 무의미함만
남을 것입니다. 믿음, 전구, 봉사! 주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니 우리 함께 기쁨의 포도주 한 잔씩 합시다.
우리 모두 잔을 높이 들고, Cheers!
– Fr. 김 두진(바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