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신비(The Cross, Mystery of Redemption): 원상복구의 작전
세상에 많은 현자들이나 훌륭한 이들 중에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님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퇴역 군인으로 64세에 무당의 딸인 17세 소녀를 세 번째 부인으로 맞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공자가 태어났지요. 그리고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공자는 어머니와 단 둘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열일곱 살엔 어머니까지 돌아가십니다. 가난한 공자는 온갖 비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공자의 시절 한 고위 관리가 공자의 제자 자공에게 “공자님은 성인이시군요. 어쩌면 그렇게 재능이 많으신가요?”하자, 그는 “본디 하늘이 그를 장차 성인으로 만들고자 하여, 그처럼 재능이 많으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제자 자공이 스승에 대해 나름대로 미화해서 설명을 하자 이를 듣고 있던 공자가 정색을 하며 자신이 재능이 많은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오소야천(吾少也賤) 고다능비사(故多能鄙事) : 내가 젊었을 때 미천하였기에 비천한 일을 할 줄 아는 것이 많다.” 공자는 자신이 다재다능한 이유를 불우한 환경에서 찾고 있습니다. 어려서 천하게 자라다보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되어 재능과 지혜가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삶도 우리가 아는 대로 녹록치 않은 삶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살았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습니다. 잠깐 동안 많은 이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감동 받기도 하고 그분이 사셨던 삶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예수님 말년에는 주위에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당대의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던 십자가 위에서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맙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십자가는 원래 중죄인을 처형하던 형벌 도구였고, 치욕과 고통의 상징이었는데 왜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달리셔야 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못 박혀 돌아가신 십자가를 구원의 신비라고 고백합니다. 이 구원의 신비를 이해하려면 우선 '구원'과 '신비'의 의미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먼저 라틴어 레뎀시오(redemtio)에서 유래한 구원(redemption)은 '다시 일으켜 세우다' '원상복귀'라는 의미입니다. 원상복귀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인간은 창조됐을 때부터 하느님으로 부터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비(mystery)는 희랍어 뮈스테리온(musterion)에서 유래된 단어인데 이는 작전이라는 뜻입니다. 전쟁 중에는 작전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모든 상황이 끝나면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현재는 알 수 없지만 끝나고 난 후 알 수 있는 것이 신비입니다. 따라서 신비는 모든 것이 다 이뤄졌을 때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구원의 신비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후 명확해진 것처럼 말입니다.
구원의 신비라는 말이 이제는 확실해 졌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구원받은 사람답게 우리 자신을 원상복귀 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원래 모습은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의 숨을 담은 흙입니다. 즉 생명(하느님의 숨)과 사랑(하느님의 모상)으로 가득 찬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하느님의 모상을 담고 있었지만 하느님 대신 자신을 채움으로 하느님의 숨(생명)을 거부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 1 독서에서 지혜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께서 지혜를 주셨고,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셨으므로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혜 9, 18) 우리가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을 더 많이 고집하고, ‘인간의 생각’이 ‘하느님의 뜻’보다는 더 낫다고 우기는 동안, 우리가 세상에서 겪게 되는 것은 어두움과 어지러움 곧 혼돈 (Chaos)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을 이겨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仁)을 행하는 것이다.” 즉 공자는 자신의 욕심, 아집, 이기심 등을 이겨내어 자기 안에 있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 양보하고 겸손하며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는 예(禮)를 다시 살리는 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이것은 무조건 자기를 억누르고 억지로 예를 차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자기 안에 있는 본래의 선한 마음,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마음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신을 단단히 싸고 있는 껍질 같은 이기심을 극복하고 깨부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원상회복-redemption)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십자가는 우리의 삶 안에서 생기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하는 단단하게 굳어버린 마음입니다. 내 삶의 십자가를 기꺼운 자세로 대하는 사람은 오늘 복음 말씀처럼 일을 마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경비를 갖추고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이며, 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서도 이만 명의 적과 싸워 이길 수 있을 만한 작전이 있는 사람 즉,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십자가의 지혜는 물고기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 자기만을 위한 편리함으로 부터 거슬러 오르는 것입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지혜를 찾는 이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1고린토 1, 22-25 참조)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통해 구원(Redemption – 원상회복)의 기회를 얻습니다. 자기를 버리는 사람답게 오늘 복음 말씀처럼 혈연이나 지연에 따라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을 위하는 마음을 거스르는 사람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라고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메고 나를 따르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져야하는 십자가, 고통에만 머물고자 고집하는 정신병자가 아니고 하느님으로 부터 지어진 원래의 모습으로 가기 위해 우리를 거슬러 올라 갈 때 비로소 하느님의 작전(Mystery)으로 구원(Redemption-원상복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김 두진(바오로)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