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됐나요? 준비………. 땅!
제가 어릴 적에 운동회에서 늘 듣던 구령입니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출발선에 서서 선생님의 딱총과 함께 출발을 알리던 소리입니다.
"준비…….. 땅!"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떠오른 장면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루카 12,35) 허리에 띠를 맨다는 것은 일할 준비 즉 자신의 역할을 언제든 할 수 있는 태도를 의미하고 등불을 켜 놓는 것은 밤에도 주인을 맞이할 수 있는 태도를 뜻하기에 언제든 주인을 위해 문을 열어주고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태도입니다. 이는 제 2독서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하고 부르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창세기 22, 1)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God, put Abraham to the test. He called to him, "Abraham" "Ready!" he replied." <The Catholic Study Bible -New American Bible Gn. 22, 1>마치 Are you
ready?하고 물으시는 하느님께 "I am ready"하고 대답하는 아브라함입니다.
오늘 복음이 길어 짧은 독서로 읽기 때문에 듣지 못했습니다만, 생략된 전반부는 지난 주 복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재물을 모아야 할 곳은 우리의 주머니가 아니라 하늘이며 이는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후반부는 우리가 읽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주인은 재림하실 예수님을 뜻하고 종들은 우리 신앙인들을 뜻하는데 이 비유를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결혼 풍습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결혼 풍습은 약혼기간이 끝나고 혼인날이 되면 저녁 때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신랑은 신부와 함께 간 손님들을 다시 신랑의 집으로 데려옵니다. 마지막으로 신랑의 집에서 잔치가 벌어지는데, 잔치는 신랑 집의 사정에 따라 며칠 혹은 더 오래 계속됩니다. 잔치가 언제 끝날 줄 모르기 때문에 혼인잔치에 참석한 주인을 집에서 기다리는 종들은 주인이 올 때까지 긴장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1독서에 봉독된 지혜서의 저자는 독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출애굽(이집트 탈출)을 상기시키며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라 권고합니다. "해방의 날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떤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지혜 18,6) 따라서 지금의 어려움은 반드시 지나갈 것이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꼭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은 꼭 성취되리라 믿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히브리 11,13) 그렇습니다. 이런 믿음 안에서 하느님의 뜻은 완성됩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미래를 약속하신 하느님께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언젠가는 그 약속이 성취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제나 충직하게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런 주님께서 우리게 사람의 아들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늘 허리에 띠를 매고 준비된 종처럼 그분을 맞아들일 등불을 켜고 있으라 하십니다.
뉴욕에 살 때 가끔 베네딕도 수도원의 피정집을 밤에 가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 수도원은 시골에 있기에 숲이 많은 길을 지나야 하는데,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사슴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머리 나쁜 사슴들이 그냥 숲에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환하게 비추는 헤드라이트를 보고 달려드는데, 어이없게도 앉아서 뻔하게 당하는 것이 사슴과의 충돌사고 입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요? 지나친 욕심으로 자기만을 위한 삶이 현명한 삶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내일, 내일 하다 우리 스스로를 욕심에 가두어 버립니다. 하늘에 쌓아놓을 보화를 속에만 품고 있다 허망한 세월에 갇혀 살게 됩니다. 마치 우리를 비추는 욕심의 헤드라이트를 향해 달려드는 사슴과 같이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사라집니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한 세상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위한 세상임을 잊고 사는 우리라면 볼 수 없는 것이겠지만, 등불을 켜고 하느님 사랑의 허리띠를 맨 사람이라면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 만큼 더 청구하신다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게 내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일은 확실한 내일이 아니라 불확실한 내일입니다.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었기에 내일도 있으리란 막연한 희망입니다. "그 종이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내 맘에 안 들어 소리 질러대고,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하고,……. 모두 자신만을 위한 행위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해야 할일을 내일로 미루고 아직도 내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살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인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허망한 내일에 사는 사람입니다. 내일로 미무며 사는 사람들은 준비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단 재물 뿐 아니라 우리의 재능, 시간, 봉사, 돌봄,…….
얼마나 많습니까?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나를 위한 동작이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등불은 자신을 위한 등불이 아닙니다. 주인을 기다리며 주인에게 비춰줄 등불입니다. 즉 남을 위한 등불이지요. 자신에 속지 말고, 내일에 속지 말며, 허리에 띠를 맨 사람처럼(자신을 위해 준비하고), 등불을 켜 들고 서 있는 사람처럼, (이웃을 향한 등불을 켜) 죽음의 헤드라이트를 쫓아가는 사슴이 아니라, 세상을 환히 비출 등불을 켜든 신앙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처럼 쉬운 실천이 아니지만, 우리가 노력하며 살아야 할 신앙인으로서의 사명입니다. 미래가 불확실함에도 아브라함은 준비된 사람으로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인 그는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히브 11 ,8)
사랑하올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 "준비되셨나요?"
김 두진(바오로)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