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마몬
평소에 먹지 못하는 음식이 많아 그런지 뷔페식당에 가면 늘 과식을 하곤 합니다. 나올 때는 너무 먹어서 후회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수도원에 살아야 할 저에겐 그리 큰 걱정거리는 아닙니다만, 많은 이들에게 노후대책은 또 다른 걱정거리 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의식주에 대한 관심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닌데 예수님의 말씀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처지를 너무 이해 못하신 것이 아닐까 싶기까지 합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마태오 6,24-34
요즈음 한국에서 대통령과 그의 주변사람들이 저지른 일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딸 같은 사람에게 주군이라고 부르며 충성을 맹세했던 이도 감옥에 갔고, 믿었던 측근들은 '나는 대통령이 시킨 일을 했을 뿐'이라 주장합니다. 어떤 이는 감옥에 갔고, 또 어떤 이는 교묘히 법의 테두리를 빠져나가 '법꾸라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의 시작이 바로 재물에서 오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말씀에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아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마몬은 아마이몬(Amaimon)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몬이란 말은 시리아 말로 '부(富)', '돈'이라는 뜻입니다. 이 악마는 원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중간, 즉 유대교 전승에서 전해지던 악마의 이름입니다. 성경의 신약성서 마태오 복음서에 보면 마몬을 사람들에게 '금전욕을 심어주는 악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악마가 세력을 갖는 것은 중세시대부터였다고 합니다. 중세시대 이전에는 부를 축적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중세에 이르러 '부르주아'층이 출현하는 식으로 '금전욕'은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마몬은 황금만능주의를 뜻하는 영어 Mammonism(마모니즘)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마몬을 섬길 상전이 아니라 부릴 종놈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마몬에게 압도 될까봐 전적으로 포기하라고 명하셨고 일반인들에게도 기꺼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같은 값이면 더 좋은 것을 찾는 것이 우리네 삶이기에 그렇습니다. 재력이 힘이 되는 세상에서 이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 재력은 사람들에게 늘 충분하지 못합니다. 더 가지고 싶고, 남들보다 더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 살맛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마몬의 힘 아닐까요?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없다고 생각하면 늘 부족하지만 또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할 수 있는 것이 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 밥 세끼 먹고, 잠 잘 곳 있으며, 부끄럽지 않게 입고 살면 충분한 것을 늘 고기반찬에 큰 집에서 금딱지 붙은 옷을 입어야 잘 사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몬을 통해 권력을 얻었던 사람들 중의 대부분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어도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권력형 비리 사건을 보면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서 왜 이런 욕심이 사람들에게 있을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이천년 전에 말씀하신 것이라 현대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서 풀려집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34
이 복음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이 뚫렸습니다. 마치 오래 된 노래를 듣는 것처럼 유쾌하기까지 했습니다.
"Don't worry be happy!" 생각해 보면 뷔페식당에서 과식하는 것도, 좀 더 많이 재력을 가지려는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먹지 못하면 또 언제 먹지? 하는 생각으로 과식하고 지금 쓰면 다음엔 어떡하지? 하는 생각으로 악착스럽게 모으고 살아갑니다. 즉 마몬이라는 귀신은 우리 마음 안에 있으며 걱정을 부추기는 마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것이지만,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걱정 중 80%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모르실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걱정이 지나치게 많고 근심이 너무 많아 함께 사는 이들에게 얼마나 소홀했는지, 아니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이런 쓸데없는 걱정으로 이웃이 경쟁자가 되고, 원수가 되는 현세를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혼자 또 소수의 하느님이 아니라 의인 악인 모두에게 비를 내리시고, 햇볕을 내리시는 분이라 지난 주 복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일했는데, 이것 밖에 안되나?'하며 걱정한들,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데, 그저 걱정으로 한숨을 쉬고 불안해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 정도로 미리 하는 근심과 걱정은 불필요하다고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오늘 제 1 독서에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잘 나타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외면하지는 않으실까, 잊지는 않으셨을까 걱정하는 우리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우리의 경험으로는 내 자식 특별히 젖먹이는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렇게 말합니다. 여인이 자기 젖먹이를 잊는 일도 없겠지만,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야 49,14-15 참조
미리 하는 걱정은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할 뿐입니다. 걱정은 희망을 없애 버립니다. 희망 없는 미래는 온통 근심과 걱정뿐인 마몬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현재(present)를 살아가는 희망입니다. 오늘(present)은 하느님의 선물(present)이기에 미리 하는 걱정과 근심으로 욕심을 부추기는 마몬의 힘에서 벗어 날 때 하느님의 선물을 기쁘게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안에서 Don't worry be happy 합시다!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기쁨을 살아가라고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