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은 무엇일까요? 사랑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유행가 가사입니다. 정말 사랑이 눈물의 씨앗일까요? 하긴 많은 유행가 가사를 보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가사도 있는 것을 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랑은 '깊은 상호 인격적인 애정(deepest interpersonal affection)에서 단순한 즐거움까지를 아울러서 강하며 긍정적으로 경험된 감정적 정신적 상태'라고 복잡하게 설명합니다. 오늘 이렇게 사랑을 장황하게 말하는 것은 오늘 복음에서만 사랑이란 단어가 9번 나오고, 제2 독서에서는 10번이나 나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두말 할 필요없이 사랑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 말씀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하신 지난 주 복음 말씀에 이어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 흐르는 생명이 사랑이고, 예수님으로부터 삶을 배우는 그리스도 신앙인 안에 흐르는 생명도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인 우리에게로 흐르는 생명의 수액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랑의 DNA를 받은 사람답게 그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요한 14, 9-10)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생 활에서 사랑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사랑은 위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오늘의 제2독서의 말씀도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4,10)이라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는 분명히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오히려 간섭 혹은 강요된(?)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맘대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 사랑의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죽기까지 스스로를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즉,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하신 예수님의 자기를 버리심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제멋대로 하는 사랑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유다교의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불행은 하느님이 내리신 벌이라 가르쳤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거나, 제물 봉헌을 잘 하지 못하면, 하느님께서 벌을 준다고 가르친 유다교의 지도자와는 달리 예수님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버리지도, 벌주지도 않으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때도,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이라 믿고,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시며,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빌면서 죽어 가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는’ 일이었다고 하며 우리도 그 사랑 안에 머물 것을 권합니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것이다.’ 포도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사랑의 수액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상대를 제압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십니다.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듯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함께 있듯 말입니다. 사랑 안에 크게 돋보이지 않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비굴함이 아닙니다.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처신하는 종을 겸손하다 하지 않고 비굴하다고 합니다. 높은 사람의 마음에 들어 한 자리 얻어 보려 소신도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는 이의 행동을 우스갯소리로 꼬리 친다고 합니다.
그 반대로 겸손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마음입니다. 겸손하지 못한 사랑은 일방적이고, 상대를 지배하는데, 그것은 횡포이지 사랑은 아닙니다. 생명에 숨결이 있듯이, 사랑에는 겸손이 있고, 배려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예수님이 어떻게 겸손하셨는지 보아야 합니다. 가난한 이, 병든 이, 세리, 죄인 등과 예 수님은 함께 어울리셨는데 이는 상대방에 맞추어서 스스로를 낮춘 겸손입니다. 그분의 겸손을 배워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는 그분에 초대에 응답해야 합니다.
사랑과 사람은 'ㅇ'과 'ㅁ' 차이입니다.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살게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내(ego)가 그 사랑을 가리고 내 만족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겸손한 사랑,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하기 힘든 사랑일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온전한 기쁨을 주는 사랑!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 하여라!"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