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비와 부활
아름다운 말씀 하나 전하려합니다. 어느 꼬마가 교황님께 이렇게 물었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시어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 하시니 지옥은 필요 없겠네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답 하셨답니다. "옛날에 천사들이 하느님이 되려는 시도가 있었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 천사들을 용서하려고 했는데 그들이 이렇게 말했단다. "용서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그곳이 바로 지옥이란다. 지옥은 하느님의 보내시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내려가는 곳이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제자들은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며,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의 의심을 잠재우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당신이 귀신이 아니시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그들 앞에서 드십니다.
오늘의 발현 이야기에서 우리가 알아들을 것은 부활에 대한 초기 신앙인들이 갖고 있던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제자들이 부활 하신 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 살과 뼈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 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즉 초기 신앙인들이 부활을 믿게 된 것은 한 순간에 쉽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을 받아들이는 삶은 ‘오늘부터는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그들의 죄가 없어지게 하라고 촉구합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회개 라는 말의 뜻은 좀 더 심오한 차원의 행동을 말합니다. 회개는 ‘내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던 일을 등지고 떠나간 삶 에서 180도 방향을 바꾸어 다시 올바로 실천하는 삶을 말합니 다. 간단히(?) 성사를 보는 수준이 아니라 삶의 전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제자들의 믿음은 곧 새로운 자각과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다.’는 말씀으로 제자들의 자각이 새롭게 되었고, 기쁜 소식의 증인으로서의 실천도 생기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기준으로 과거 이스라엘의 신앙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유대교 안에서 하느님을 찾게 하시려는 노력을 하시다가 그 시대의 힘있는 자들에 의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루카 24,44)
모세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은 무작정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삶 안에 함께 계시도록 하기 위한 지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 지키기에 급급한 나머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숲속에서 나무는 보지만 숲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언자들은 그런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각 예언자가 처한 사회적 상황은 달랐지만,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예언자들의 부르짖음은 같습니다. 또한 시편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여러 상황에서 체험하고, 그 체험을 노래한 책입니다. 오늘 복음이 구약성서의 여러 책들 중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 이 세 가지를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그 책들이 초기 신앙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깨닫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한 초기 신앙인들은 새로운 실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루카24,46 마침내 예수님 이 가르친 복음은 그분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민족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라고 요약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실천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사람이 모셔드리고, 그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르친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율법에 얽매여, 지키고 바치는 일에 열중하면, 성취감은 있어도, 하느님은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분의 일을 자유롭게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용서하십니다. 용서는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에는 하느님이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그 마음은 생명을 미워하고 죽입니다.
오늘 복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용서라고 요약한 것은 예수님이 믿고 가르친 하느님은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생명을 아끼고, 용서하며, 보살피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되어야 하는’ 회개가 있다고 말합니다. 회개는 고행이나 보속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하느님을 향해 사람이 돌아서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회개로 속박에서 자유로워져 하느님의 일을 실천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바로 자 비로우신 그분과 함께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