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

 

 

 

 

 

오늘은 승천하신 예수님을 경축하는 주일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한 육신과 영혼을 지닌 채 "하늘에 오르셨다"고 믿습니다.

(사도신경). 예수님의 승천처럼 성모님도 승천하셨는데 같은 승천일까요? 사실 같은 말이긴 하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과 성모님 승천에 사용되는 단어가 다릅니다. 우리말로는 똑같이‘승천’이지만, 라틴말을 보면 두 분의 승천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는‘승천(Ascensio)’이라고 하지만, 성모님에게는 ‘받아들여짐(Assumptio)’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도 예수승천은‘Ascension’, 성모승천은‘Assumption’이라고 합니다. 예수승천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육신과 영혼을 지닌 채 하늘로 오르신 사건을 말하며, 승천의 주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성모승천은 엄밀히 볼 때 성모님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로 올림을 받은 피승천입니다. 그래서 라틴어로 받아들여짐이라는 뜻의 Assumptio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과거 한국 천주교회에서도 성모 승천을 예수승천과 구별하기 위해서 ‘몽소승천’이라고 불렀습니다. (蒙:받을 몽, 召:부름 소). 쉽게 말하자면 예수님은 스스로 승천하셨지만, 성모님은 하느님의 불림으로 승천하셨다는 것이 큰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복음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발현하여,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 편에 앉으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느님과 함께 계신다고 믿는 제자들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우리가 기념하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이야기들 안에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듣는다는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류는 하늘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하늘에 빌고, 하늘을 우러러 반성하고, 푸르고 넓은 하늘을 보면서 답답한 가슴을 달래며 살았습니다. 오늘 대도시에 사는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볼 여유도 없이, 우리 삶의 일상쳇바퀴에 갇혀서 삽니다. 넓고 푸른 하늘, 밤이면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 우리의 삶에서 사라진 그만큼, 하느님에 대한 감수성도 우리에게서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삶에 숙연함을 주는 체험이 사라졌습니다. 넘쳐나는 인간의 생산품에 시선을 빼앗기고, 정보매체들이 전하는 정보의 홍수에 빠져서, 우리는 분주하게 또 고달프게 삽니다. 하늘을 우러러 생각할 겨를도 없고,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여유도 없습니다. 빨리, 빨리 살아야 하는 삶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돌볼 여유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것이 가장 최선의 삶 인양……..

 

그러나 그렇게 무엇에 속고 사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삶이 우리 사람들이 원래 살아야 하는 삶은 아닐 듯합니다. 승천 축일에 하늘을 우러르며 우리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듯, 우리가 묻혀 사는 일상적 일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우리의 삶에 분명히 있음을 압니다. 넓고 푸른 하늘,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하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하늘, 그런 하늘이 우리의 삶에 있듯이,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넓고, 신선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어야 하는데 바쁨에 치여 하늘 한줌 볼 겨를 없이 사는 내가 부끄럽습니다.

 

예수님은 절망과 실의에 빠진 병자들을 고쳐서 삶의 현장으로 되돌려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버려진 이들에게 용서를 선포하여, 그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해서 예수님을 체험한 그들은 모두 장애를 넘어 새롭게 살았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욕망들이 있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 등을 향한 욕망이 우리를 실의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신앙 안에서 체험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욕망에서 벗어나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으로 넓은 시야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사는 사람들은 남들 위에 군림하지도 않고, 남들의 박수갈채를 욕심내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겪는 실패 안에서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무덤에서 끝나지 않듯, 하늘을 우러러 사는 우리들 안에서 살아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은 그분의 죽음으로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지만, 그 사랑과 섬김은 우리들의 삶 안에서 꽃피워 부활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하느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 안에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살아 계시는 마음 안에 하느님이 함께 계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세상 끝 날까지 있겠다.'라고 하신 예수님은 푸르고 넓은 하늘 아래,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모든 사람들 안에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우리에게 하늘을 우러러 보면 예수님도 보여 집니다. 해서 우리는 하늘에 빌듯이, 예수님께 빌고, 하늘을 우러러보듯이, 예수님을 우러러 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또 새롭게 해주는 하늘처럼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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