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3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9 6일 연중 제 23 주일 복음 묵상

오늘
복음은 신앙인이 자기에게 잘못을 저지른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를 말한다
.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타일러보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생각하라.
는 말씀이다.

 


마태오
복음서를 집필한 공동체는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이었다
. 따라서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율법서의 표현을
빌려
, 예수님이 가르친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며 기록하였다.
15
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교우가 죄를 짓거든 이른바 형제적 충고를 하라는 규범인데 이는 교회의 명예를 손상하는 죄를 지은 경우에
한해 형제적 충고를 하라는 뜻이다
.

 

얼마
전만 하더라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혹은 이웃을 타일러 주는 일이 많았다
. 그것이 미덕이고 사랑이었다.
좋은 약이 입에 쓰고, 좋은 말이 귀에 거슬린다.는 격언이 통용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현상이 사라졌다
. 불행한 것인지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현대인은 타이르는 행위를 불필요한 간섭으로
여기고
, 충고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얼굴 마스크 쓰라고 했다가
봉변당하고
, 마스크 올바로 쓰라고 했다가 총맞는 세상이다. 각별히
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 충고는 상대방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주제넘은 일로 이해된다. 오늘은 각자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정보를 얻고, 각자가 취사선택하여
자율적으로 결정하며 산다
. 따라서 오늘날 남에게 하는 충고는 이웃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로 보일 수
있다
.

 

하지만
오늘의 복음에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말씀은 분명히 있다
. 이웃이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먼저 개인적으로 만나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그것으로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타이르고, 그래도 되지
않으면 교회공동체에 알리면서까지 최선을 다 하라는 말씀이다
. 그러나 그런 시도들이 모두 실패하면,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와 같이 생각하라는 말도 있다. 이 말씀을 풀어볼
때 자기에게 피해를 준 사람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스스로 최선을 다하되
, 그것이 실패할 경우에는 이교도나
세리에게 하 듯이
, 그를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두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 사실 그 시대 유대인들에게 이교도나 세리는 미워하고 말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려 해도
, 그 마음이 이웃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만
, 이웃은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했다고 해도, 그것이 이웃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보장은 없다
. 나는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돼있어도, 상대방은
받은 상처 때문에 많이 아파하고 있을 수 있다
. 따라서 그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웃 사랑은 먼저 이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 그래서사랑은 오래 참아야한다.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실천한다
.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이 우리의 삶 안에 나타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 예수님은 이웃을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며 사랑하셨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이고, 섬기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 45)고 말씀하셨고,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도 서로 섬기면서 살기를 바라셨다. 결국
교회에는 이렇게 자발적 섬김이 돋보여야 한다
.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모여서
기도한다고 하면서
, 남을 비방하고 성토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려면 나 스스로 자해하지 않고 서는 상처를 줄 수 없다.

 

신앙공동체에는
섬김이 돋보여야 한다
.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온다.(1요한 4,
7)
고 요한사도는 전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도 군림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으면서
섬기고 사랑하셨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가 섬김, 사랑, 용서를 실천 할 때 비로서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