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말씀은 임금께서 잔칫상을 차려 놓고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그들은 그 초대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거절한다. 설상가상으로 임금의 초대를 전하러
온 사람들을 학대하고 더러는 죽이까지 한다. 그래서 임금은
진노해 그들을 벌하고 다른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혼인 잔치에 응하지 않고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온 메신저를 학대하고 죽인 불손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지난주에 말씀드렸다. 우리가 들은
복음은 마태오 복음이다. 집필한 사람은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 신앙인이었다. 따라서 그 공동체는
그들의
조국이었던 이스라엘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오늘 복음에서는 ‘임금이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고 전한다. 이 복음서가 집필되기 불과 10여 년 전에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거슬려 전쟁을 일으켰다가 참패하였다.
예루살렘을 비롯한 많은 고을이 불타고
참담하게 파괴되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비극이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고 하느님이 보내신 예언자들을
죽이기까지 한 이스라엘을 하느님이 응징 하신 것이라고 보기에 충분했다. 행여 코로나바이러스가 하느님의
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된다. 하느님은
우리게 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다.
오늘 우리는 잔치에 대해 듣는다. 잔치는
내가 차리는 것이 아니고 초대하는 사람이 준비하는 것이니,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나라다. 마치 엄마가 저녁 준비 해 놓으시고 자녀들을 불러 모으시는
것처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베풀어진 것을 함께
나누면서 즐기고 기뻐한다. 바로 초기공동체가
이스라엘을 대신해 잔치에 초대 받았다고 생각한 것은, 복음이 그들에게 베풀어졌고, 그것을 형제자매들과
나누면서 그들은
즐거웠고 기뻤기 때문이었다.
오늘 복음에서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가지 않았다. 세상의 일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밭에 나가고, 장사를 하러 나가고, 세상의 일에 모든 것이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기에 남에게 관심도
없고 자기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예수님은 병든
이들을 고쳐주고, 죄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용서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으며 가난한
이도, 굶주리는 이도 우는 이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선포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을 섬기는 분이셨다.
나중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길거리 지나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집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말하다가
불쑥 예복 이야기가 들려진다. 초대받았다면
그 잔치에 합당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을 초대해 놓고 갑자기 예복이야기를
하며 쫓아내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만, 기실 초대받은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초대된 사람들 스스로
준비하는 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준비하는 정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예수님의 대한 말씀을 신앙의 유산으로 받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앙인 것은 그 복음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들어야 하고 예수님의 대한 이야기들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새로운 실천을 배워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합당한 준비다. –물론 하느님께 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이기 전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제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으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저녁노을이 물들고 골목길이 어둑해 지면 어김없이 들리던 소리 “아무개야 밥 먹어라.” 같은 의미로 우리 신앙
안에서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와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며 말씀
하신다. 주님의 잔칫상에서 받아먹어라, 받아 마셔라.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밉다. 그러나 사랑의 주님께서는
우리가 초대받았으나
오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우리의 아픔을 아실 것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이 기쁜 말씀이긴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슬퍼진다. “내가 차린 잔칫상에 와서 먹고 마셔라.”